Good Dream

( James T. Kirk X Montgomery Scott )

















나의 너는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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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곧 나의 안식이라. 끝을 모르는 검은 우주의 한 가운데 있으면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금방이다. 항성의 주변을 도는 행성에 정박하지 않는 이상 한 해 뜬 낮을 느끼기란 힘들다. 언젠가 본즈가 태양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광합성이 얼마나 인체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구구절절 읊은 적이 있다. 보드카 반병을 비웠으니 반쯤은 헛소리였을 수도 있는데, 그만큼 ‘낮’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똑같은 일상, 똑같은 사람들과 하루를 보낸다. 연방 기점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없었다면 오늘이 언제인지 또 몇 시인지 알지도 못 하는 그 공간에서 하루를, 한 달을, 그렇게 몇 년을 보내왔다. 그러고 나면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은 새까만 밤의 여신 품에 안긴 채 침묵 속에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천국에서 내리는 평화인지 무료함을 가장한 손 안에 칼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채로.


나는 제법 말이 줄었다. 본즈는 그것이 어른스러워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드디어 너도 철이 들었구나. 그렇게 말하는 본즈의 얼굴은 썩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안다.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어떤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고, 여기 이 함선 내에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나였다. 이래저래 투덜거리긴 해도 내 짐을 덜어주려고 나름 노력하는 본즈의 입장에서는 급작스럽게 철이 들어버린 내가 꽤나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사고만 치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설령 이 족쇄가 꽤나 무겁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이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 말이 줄었다는 건 그만큼 신중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조차도 말을 아껴야 했다. 지금 내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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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는 항상 사소하다. 전염병. 본즈가 질색을 하는 우주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것들. 원인을 알 수는 없다. 지난 번 행성에 정박했을 때 옮겨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에 잠복하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퍼져 나갔을 수도 있다. 원인을 모르니 당연히 치료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주 오래간 내 함선에서 일을 하던 크루 두 명을 탈출선에 넣어 우주 밖으로 던져 버렸다. 시체에서도 옮을 수 있는 것이 전염병이었고 함선 내에서 불을 이용할 수 없으니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매일 익숙하게 보던 내 사람 두 명을 가족들에게 시신조차 보이지 못하고 그렇게 쓰레기처럼 던져버린 것이다. 


조촐하게나마 치러진 장례식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이들과 다음 타겟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상황을 타계하지 못하는 책임자들을 향한 원망,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여 기괴한 울음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나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못하고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그렇게 서있었다. 그리고 여상하게 일상을 이어나갔다. 본즈와 채플을 포함한 의료팀에겐 하루 빨리 해결점을 찾아보라 했고, 그 뿐만이 아닌 스팍을 포함한 모든 과학 팀들에게도 이 사항을 지시했다. 우후라에게는 근처 행성에 도움 요청을 넣으라고 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어느 행성도 해결책을 몰랐고, 우리를 받아주려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전염병을 실은 함선을 정박 시켰다가 행성 전체를 병들게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방에서 온 통신에서 조차도 고개를 저으며 행운을 빈다는 말만을 남길 뿐이었다.


이성적인 판단이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성을 감성이 따라가질 못했다. 나는 어쩐지 버려진 느낌이었다. 난파된 배를 안고 무인도에 남겨진 기분. 허탈감과 함께 자괴감이 들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앓고 있는 크루들에게 괜찮아, 조금만 참아, 라고 말 뿐인 격려를 남기고, 나보다 훨씬 유능한 이들을 닦달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라며 떼를 쓰는 것이 내 전부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욱이 입을 닫았다. 번지르르한 입으로 하는 말은 어떠한 해결점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이 상황이 어서 지나가기를, 하루 빨리 방법을 찾기를.



“당신은 잘 하고 있어요.”



내 연인은, 매일 기름칠을 하고 기계 사이를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바쁜 그 이는 부쩍 말수가 적어진 나를 의식했는지 모처럼 일을 통째로 킨저에게 미뤄두고 내게 찾아왔다. 쿼터의 좁은 침대에서 몸을 부대끼며 나는 쾌락이 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을 증발시키길 바랬고, 스콧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 안에 꽁꽁 싸매면 힘들지 않아요? 나한테라도 다 털어 놓지 그래요. 한껏 몰아 붙여 진이 빠진 채 제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 너랑 있는 시간에까지 그런 얘길 하고 싶진 않아.”

“다른 데에서는 해요? 짐, 내가 보기엔 당신 지금 완전 과부화예요. 톡 하고 건들면 터져버릴 것 같다니까요? 그냥 털어 놔요. 밖으로 말해보면 뭔가 후련한 게...”

“내가 지금 너한테 겉만 번지르르한 네 애인은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말하라는 거야?”



톡 하고 건들면 터져버릴 것 같은 불량 폭탄, 그의 말따마 나는 그랬다. 본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것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잠깐 입을 닫았다. 언젠가 본 적 있는 표정이었다. 내가 내 함선에서 그를 해고 했을 때, 화조차 내지 못하고 나한테 받은 상처를 억누르는 그 얼굴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그 표정을 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고개를 돌린채 내 화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좀 예민해서 그래, 너한테 상처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 네가 좋으니까 그냥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 이딴 말 같지도 않은 변명들을 홀로 떠올리고 있는데, 그 때 그가 했던 말이 그거였다. 짐, 당신은 잘 하고 있어요, 라고. 그 소리에 놀라 다시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저 어둠처럼 자애롭고 평안한 얼굴을 한 채 눈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나도 무서워요. 언제 그 바이러스가 나를 덮칠지 몰라서. 근데 그래도 당신을 보면서 버티거든.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생각하며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당신이 믿음직스러워서 무어라도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거요.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요.”



내 가슴을 쓸어주고 머리를 부비우며 그는 나를 달랬다. 청회색 눈동자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밤하늘의 별처럼 흐트러지는 것을 보고 나 역시 참아 왔던 불안함을 쏟아내며 함께 오열했다. 나는, 아프고, 힘들고, 불안하고, 무서워. 여리고 약한 속을 까발리자 그는 헐벗은 나의 목덜미를 끌어 가슴 안에 품는다. 알아요, 고생했어요. 내 말에 일일이 답을 던지면서 그는 나와 닮은 울음을 쏟아 내며 그렇게 한참을 훌쩍거렸다. 나는 그날 그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위안을 자장가 삼아 어머니의 자궁 안을 유영하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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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우리는 10명의 시신을 처리했고, 24명의 환자를 쿼터에 격리시켰다. 그 24명의 환자 중 내 연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운이 나빴네요. 그렇게 말하는 스콧은 의연했다. 마치 이 죽음을 각오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때때로 커뮤니케이터로 외부에 연락을 하며 그렇게 지냈다. 나는 괜찮아요, 짐. 그의 쿼터 앞에서 문 하나를 두고 내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본즈에게 들은 바로는 들어간 음식을 곧잘 토해내 목구멍이 부어 영양주사를 놓는 것이 전부라고 했고,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핼쑥해졌다고 했다. 아니, 그걸 몰랐더라도 문 너머 들려오는 쉬어 빠진 목소리가 이미 말하고 있다. 그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그의 건강이 악화될수록 견디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되뇌며 이 진저리나는 상황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을 꾹꾹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었다. 괜찮아?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하던 것을 집어치우고 기어이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마치 토해내 듯이 그의 쿼터 문 앞에서 뱉어냈다. 굳게 잠겨 안에 있는 사람이나 담당의인 본즈가 아닌 이상 열지 못하는 문을 쿵쿵 두드리며 억지를 부렸다.



“네가 보고 싶어. 문 열어줘, 스코티, 못 견디겠어. 죽을 것 같아. 살려줘.” 



정작 죽어가는 이를 앞두고 살려달라는 내가 어찌 보였을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문 너머 그의 표정을 이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우리가 얼굴을 언제 마주했는지 이제는 까마득할 정도였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는 침묵했다. 마치 내가 모든 절망하는 이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색색거리며 꺼져가는 숨소리 하나 놓칠 새라 문에 귀를 바짝 대고 한 참을 서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내가 한심하고 이제는 지쳐서 물었다.



“나의 너는 어디에 있어?”



내 곁에 있어야 하는 너는, 유약한 나를 품던 너는 어디 갔냐며 묻는다. 그는 한 참 뒤에야 답했다.



“여기에, 당신의 것으로 온전히 남아 있어요.”



소금기 어린 밤바다가 어두운 밤하늘에 삼켜져 그 지평선을 지우는 것처럼 우리는 이 문을 뚫고 언제나 마주하게 될까.



“하지만 당신은 캡틴으로 남아줘요.”



나의 짐, 나의 가면, 나의 허울뿐인 왕관. 이걸 버린다면 나는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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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나는 본즈의 키를 빼앗았다. 문을 열고 침상에 피를 토해내며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악을 쓰며 나를 밀어내는 너를 잡았다. 가는 손가락이 꺾어지도록 팔을 엮어 돌아가는 고개를 억세게 잡고 피비린내 나는 입술에 입을 맞추어 네 피를 핥았다. 너는 울었고, 나는 웃었다. 


고치를 가르고 새로이 태어나는 나비처럼 나는 그렇게 버렸다,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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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제를 찾았다며 지친 얼굴을 한 본즈를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난 침대 헤드에 기댄 채 말라 비틀어져 가고 있었고 내 연인은 여전히 내 두 팔 안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날 본즈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덜덜 떠는 주사기를 내 팔에 꽂아 넣으려고 할 때 나는 그것을 물렸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절절한 얼굴로 본즈와 그에 뒤따르는 크루들이 나를 보았지만 내 옹졸한 마음을 기어이 꺾지 못했다. 그들은 내 거절에 침묵했다. 그것이 제 색을 잃은 채 이제는 붉은 색으로 변해버린 침상 때문인지 아니면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끝끝내 눈을 뜨지 않은 채 자고 있는 나의 연인 탓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셔틀선도 필요 없다. 그저 두 몸이 들어갈만한 탈출선 하나로 족했다. 어차피 우리가 같이 잠을 자고 생활했던 쿼터 안의 그 침대도 그만큼 작았으니 별다를 바 없었다. 좁으면 살이 더 부딪히니 좋잖아요. 언젠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웃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 닿지 않는 거리보다는 좁은 것이 훨씬 나았다. 가벼운 그의 몸을 밀어 넣고 그 옆에 몸을 누이며 나는 홀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 말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지만 그 날 버려버린 모든 것들에 섞여 날아간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했던 말은 그거였다. 모두 좋은 밤 돼. 잠들기 전 인사로는 제일 적합한 것 같았다.


탈출선의 본채가 함선에서 떠밀려 나왔다. 나는 멀어지는 엔터프라이즈,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내 연인의 아이, 그리고 나 제임스 커크에 달려있던 마지막 꼬리표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점점 그것들이 작아지고 또 어둠에 먹혀 사라지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또 영원한 밤이 찾아왔다. 이제는 내가 그를 품었다. 딱딱한 그의 몸을 끌어안고 체온 없는 피부 위에 온기를 전했다. 그는 깨지 않았다. 깊이 잠이 든 듯 눈을 뜨지 않았다. 좋은 꿈을 꾸는 모양이지. 나도 잠들면 같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 철이 없고, 그런 나와 함께 해주던 네가 있던 그때와 같은 그런 꿈. 그런 꿈이라면 영원히 격리되어 있어도 좋을 텐데. 어린애 발상 같다고 스스로를 비웃으며 나는 물끄러미 저 밤하늘 너머 그의 눈물이 박힌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침묵이 내려앉은 어둠이 우리 둘을 감싸고 곧 안식이 찾아왔다.


그렇게 난 깊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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