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ert Flower 4
( James T. Kirk X Montgomery Scott )
눈을 떴다. 그곳은...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하늘은 온통 흰 빛으로 번쩍거려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몸은 파란 모래들과 함께 공중을 유영하고 있었다. 내장이 쥐어 짜이는 듯한 어지러움에 스콧은 손으로 가슴을 치려고 했지만 그의 사지 어느 곳 하나 제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 푸른 별이 어둠 뿜는 빛에 휩싸여 곧 검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각조각 나는 대지처럼 스콧은 자신의 몸이 곧 조각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흡은 가빠지고 몸의 뼈가 이상하게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아누비스의 핵으로 들어가는 대기권에 섞여있는 많은 것들 중 그의 몸이 가장 유약했다. 아마도 운석 하나에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그의 몸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건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살아 있었다. 곧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왔다. 파란 모래들이 그의 몸 위를 스치운다. 마치 푸른 바다 위를 헤엄치는 것처럼 스콧의 몸은 모래의 물결을 따라 정처 없이 아누비스의 대기권을 돌았다. 그를 감싸고 있는 푸른 모래들은 마치 그를 지켜주는 보호막처럼 시종일관 떨어지질 않고 조각나는 대지의 행렬 속에 길을 만들어 놓았다. 또 파란색. 그는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를 보며 웃었다. 시공간의 왜곡으로 일그러지는 시야 때문에 어지러운 상태에서도 그는 제 생명을 이토록 질기게 안고 있는 푸른색에 대해서 떠올린다. 그와 같은 눈동자를 가진 어떤 이를.
삐익 삐익- 그가 입고 있는 우주복에서 경고를 알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산소부족. 앞으로 그가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끝인 걸까? 헬멧에 이는 하얀 입김을 보며 자신을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검은 핵을 본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 지 알 수 없다. 그저 중력으로 뭉쳐진 덩어리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워홀이 될 지도 모른다. 스콧은 생각했다.
저 너머에도 당신이 있을까?
***
언제까지고 나를...
***
처음엔 주마등인 줄 알았다.
감각이 깨어난다. 제일 처음 들린 것은 삐익 삐익- 울리고 있는 우주복의 경고음이었다. 청각이 돌아오자 곧 크게 숨을 들이킬 수 있었다.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올린다. 빛바랜 시야 위 고장난 TV 화면 같은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오색의 끈들이 어떤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스콧은 그것이 눈의 난반사가 만드는 허상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초점을 찾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제 앞에 펼쳐진 상황을 유심히 보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색이 겹쳐진 선의 대열에서 무언가를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여러 색이 섞여 있는 모자이크 속에서 빨간색 점을 찾아야 하는 적록색맹이 된 기분이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스콧은 이 상황이 사후의 경계 너머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끈들이 만든 정면의 프레임에서 눈을 떼고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 아래는 허공이다. 딛고 있는 땅이 없이 끊임없는 어둠과 그리고 그 어둠을 따라 쭉 뻗은 끈의 연속적인 프레임만 보일 뿐이다. 그것은 아래뿐만이 아니다. 그의 발아래, 발 옆, 양 어깨너머 그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서도 끝없는 어둠과 빛나는 끈들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스콧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의 가슴 앞에 길게 뻗고 있는 끈 하나를 보았다. 마치 파란색 모래를 엮어 만든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끈 하나가 오색 끈의 무리와 그를 이어주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그 팽팽한 파란 끈 위를 살짝 누르자 끈이 진동하듯 울린다. 그러자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정면에 있던 끈들이 마치 그 진동에 답하듯 움직이며 이어진 자리부터 어둠에 가려진 저 먼 곳까지 파동을 이어나간다.
이번에는 끈을 잡았다. 그는 두 손으로 잡은 끈을 천천히 잡아 당겨 정면으로 나아갔다. 눈앞에 어지러운 벽이 점점 가까워졌다. 스콧은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파란색 끈은 여전히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스콧과 오색 끈이 만들어낸 빛의 벽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닿는다. 그것이 닿았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스콧은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스콧의 몸이 벽에 먹혀 들어갔다. 그가 잡고 있는 단단한 푸른 끈과는 달리 벽을 이루는 색색의 끈들은 그를 잡지 않고 통과시켰다. 자신을 삼키는 빛에 눈이 멀어 스콧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제 손에 잡히는 끈을 계속해서 잡아 당겼다.
어느 순간 나아가던 몸이 훅- 하고 잡아 당겨진다. 눈꺼풀 안쪽을 빨갛게 점멸하던 빛이 사그라졌다. 스콧은 허억- 하고 숨을 들이켰다. 감각이 요동치며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천지 분간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다시 깨어난다. 응당 들려야할 경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스콧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앞에 보이는 것은 더 이상 빛이 아닌 익숙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누비스의 아가리처럼 눅진하고 검은 어둠이 아니었다. 물건에서 뻗어 나오는 난반사처럼 끈들이 가득했지만 그 형태는 온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스콧의 기억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였다.
어디선가 증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천장에 얼어 있던 얼음이 녹아 바닥은 항상 흥건했고 공기는 늘 습했다. 아무리 보온기기를 틀어 놓아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항상 온 몸에 두꺼운 옷을 덮고 있어야 했다. 몇 번이다 공식을 쓰고 지우다가 결국 찢겨진 종이는 바닥 위를 뒹굴었고 마시다 식어버린 커피는 더러운 머그잔에 담겨 책상 위 서류들과 함께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기름으로 지저분한 기계들과 그 사이에 앉으면 늘 끼익- 소리를 내던 의자가 보였다. 스콧은 그 곳에 앉아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이를 본다. 비니 모자를 눌러 쓰고 몇 겹의 옷을 껴입은 남자가 더러운 발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채로 자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자신이었다. 델타베가의 연구실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났다. 스콧은 연구실 문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해 자신의 몸과 이어진 파란 끈이 닿아 있는 문을 보았다. 문이 열렸다. 고글을 낀 킨저가 보였고 그 뒤로 두 남자가 있었다. 문으로 이어져 있던 파란 끈은 이젠 그 두 남자 중 하나에 닿아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앳되고 그의 가슴에서 이어지는 파란색만큼 화려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남자, 제임스 커크와.
"짐..."
스콧은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마치 스콧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다음에 펼쳐지는 상황들은 스콧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 그대로였다. 킨저가 자고 있는 자신을 깨웠고 자신은 그들을 본부에서 온 충원 인원이라 생각했다. 스팍 대사가 자신의 공식을 완성시켜 주었고, 그 다음은...
"짐, 짐!!!!"
이것이 기억의 한 장면이고, 자신의 주마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콧은 그에게 말을 전하려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 이대로라면 과거의 자신과 그는 엔터프라이즈로 전송될 것이고 그러면 더 그를 보지 못할 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말을 정해야해. 제대로 할 말을 정하지도 못했으면서 스콧은 무작정 그를 붙잡아 두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몸은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팔을 휘적거렸다. 그러다 책상 위 컵에 걸려 있는 끈 하나를 무심결에 쳤다. 그 힘에 밀린 컵이 휘청이다가 바닥 아래로 추락한다.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컵이 깨졌다. 과거의 자신을 따라가던 커크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어서 오라는 고함소리에 얼른 다시 걸음을 돌렸다.
젠장, 스콧은 좀처럼 제 맘 같지 않은 상황에 욕지기를 했다. 그는 어떻게라도 움직이려 제 가슴에 이어진 푸른 끈을 잡아 당겼다. 이 끈이 커크와 이어져 있다면 이걸 당기다보면 그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끈을 당기자마자 아까 빛의 벽이 자신을 삼켰던 것처럼 앞에 있던 배경이 훅- 하고 다시 스콧의 몸을 덮쳤다. 책장이 넘어가는 것처럼 공간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고 또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은 더 이상 델타베가의 습하고 추운 연구실이 아니었다. 그곳은 엔터프라이즈였다.
스콧은 멍하니 파란 끈이 이어지는 앞을 바라보았다. 커크가 물탱크에 갇힌 자신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루들이 페이저 건을 들고 그들을 에워싸는 것을, 브릿지로 송환되어 스팍과 싸우는 것을 가만히 보았다. 스콧은 다시 파란 끈을 잡아 당겼다. 눈앞에 공간이 빠르게 그를 뒤덮고 또 다른 공간으로 펼쳐진다. 어뢰 사이를 지나가는 자신과 자신을 쫓아다니는 커크를 본다. 그리고 하선 명령을 받고 나가는 자신과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그를 본다. 다시 파란 끈을 당긴다. 장면이 바뀐다. 우주복을 입은채 들어오는 두 사람과 패드에 매달려있는 자신이 보였다. 페이저건을 들고 세 사람은 사라졌다. 다시 파란 끈을 당긴다. 추락하는 엔터프라이즈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과 그, 자신을 기절시켜 묶어두고 거리낌 없이 코어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았다. 다시 파란 끈을 당긴다. 자신의 기억 속에 시간과 장소들이 그를 시쳐 지나갔다. 그리고...
"자는 거야?"
너저분한 호텔 방이었다. 스콧은 침대 밖 멀찍이서 방 안의 모습을 바라본다. 술에 절어 벌거 벗은 몸으로 엎어져 자고 있는 자신 옆에 모로 누워있는 그를 본다. 그는 자신이 자는지 몇 번이나 확인 하듯 몸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기어이 제가 깨지 않자 포기한 듯 고요한 눈으로 제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스콧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었다. 파란 눈이 촉촉하게 젖은 채 어둠과 섞여 가라앉아 어느 때보다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입가에 걸려있는 웃음 때문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커크의 얼굴은 낯설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고 있는 자신의 이마 위쪽을 문지르다가 코를 한 번 건들이고 볼가를 간질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관자놀이 쪽에 제 코 끝과 입술을 부비다가 이마를 대고 한 숨을 푹 쉬었다.
"스코티."
제 이름을 부르다가, 멈칫 입술 끝을 떤다.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고는 다시 피식 웃는다.
"뭐하냐, 나. 자는 사람한테 고백해서 뭐해... 그래, 깨면 말 해야지. 깨면..."
그리고 푸념하듯이 그렇게 토로한다. 그 말이 대단한 보석이라도 되는 냥 입 안에 고이 묻어 두고 만다. 커크는 이마를 떼고 다시 모로 눕는다. 눈 감는 그 순간까지도 옆에 둔 제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듯 한참을 그렇게 저를 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방 안에 고요한 숨소리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 다음의 상황을, 스콧은 알고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뜰 테고, 자고 있는 커크를 보며 흐린 기억 속에 정사를 떠올릴 것이다. 옷가지를 챙겨 입고 도망가듯 그 방에서 나가면서 이 일은 없었던 일이라고,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할 것이다. 바쁜 척 열흘 동안 그를 피해 다니겠지. 그리고 혹여나 그가 그 일에 대해서 운이라도 띄울라 치면, 과음을 핑계로 기억나지 않는다며 잡아 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스콧은 한참이 지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짐, 미안했어요. 울음으로 일그러지는 입술 사이로 닿지 않는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다. 고요한 방, 앞으로의 일을 모른 채 평안하고 행복하게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스콧은 유령처럼 허공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겪지 않은 일들을 참회하고 후회하며 운다. 그는 더 푸른색 끈을 당길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곳에서 그만 시간을 멈춰버리고 싶었다.
***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한참을 울고 나서야 스콧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여전히 호텔 방 안에 있었고 두 사람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스콧은 다시 제 앞에 뻗어있는 파란색 끈을 본다. 이 끈의 의미에 대해 스콧은 모르지 않았다. 이것은 주마등같은 것이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었다. 스콧은 머릿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큼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다 풀리지 않은 이론 하나를 끄집어냈다. 모든 것은 고유의 진동을 지니고 있는 끈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초끈이론으로 따진다면, 그가 있는 이곳은 현실의 4차원 너머의 고차원 공간일 것이다.
블랙홀이 지닌 중력 에너지로 인한 차원의 뒤틀림으로 고차원에 넘어 와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했을 때, 스콧이 지금 있는 곳은 과거이기도 하면서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자 스콧의 머릿속에 또 다른 희망이 생긴다.
만약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올리자 스콧의 마음이 벅차기 시작했다. 그는 빠르게 파란 줄을 끌어당겨 장면을 바꿨다. 정확히는 자신이 이시스로 가야하는 명령을 받기 전 상황으로. 엔진 코어 옆에 서있는 자신과 커크를 본다. 커크는 꺼림칙한 얼굴을 하고 아처 제독의 명령을 전하고 있었다.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스콧은 악을 쓰며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과거 자신에게 외쳤다. 하지만 소리는 닿지 않았다. 어떻게든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아등바등 몸을 움직였다. 하다못해 패드에 쓰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치 벽에 가로 막힌 것처럼 그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손에 닿는 것은 물건도 아닌 그것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끈들뿐이다. 팔이 휘저어 질 때마다 그 끈에 걸린 물건들이 약한 진동으로 미세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그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부였다.
희망이 꺼지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는 이 고차원에 홀로 남아 자신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것을 보며 커크가 괴로워하는 것을 남일 인 냥 쳐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파란색 끈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가만히 제 앞의 장면들이 천천히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자신이 없는 그들의 상황이 눈앞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무감각한 얼굴로 자신이 탄 셔틀이 페이저 광선에 맞고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를 지켜보던 커크가 굉음을 질렀다. 그는 엔터프라이즈에 도착하자마자 광분을 하며 어떻게든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며 억지를 부렸다. 이성을 잃은 그를 무작정 따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결국 스팍의 손끝에서 마무리 되었다. 너브핀치를 맞은 커크가 쓰러지고 스팍이 임시 함장 직에 올랐다. 그는 체콥에게 스콧이 타고 있는 셔틀의 위치 추적을 지시했고 동시에 USS 엑스칼리버를 무력화 시켰다. USS 엑스칼리버는 더 이상의 공격을 자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순히 스팍의 말에 따랐으나 체콥은 스콧의 셔틀을 추적하는 덴 실패했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은 통신을 통해 들어왔던 일들 그대로였다. 엔터프라이즈는 엑세터로 향해 생존자를 인계시켰다. 그 사이에 깨어난 커크는 스팍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블랙홀에 대한 연구를 지시한 후 자신을 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상부에 보고를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 사이 캐롤이 복귀했다.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벗어난 그녀에게 책임이 주어졌지만 그녀는 끝까지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처는 체포되었다. 수갑에 묶인 채 죄인처럼 끌려가는 그의 얼굴은 어딘지 후련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나무 껍데기 같았다. 엔터프라이즈는 다시 누트로 향했다. 과학부가 연구한 공식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우후라와 스팍은 계속해서 통신을 보냈고, 체콥과 술루는 셔틀 및 생명체 반응을 추적했다. 본부로부터는 계속해서 복귀 명령이 떨어졌지만 커크는 이를 무시했다. 하지만 결국 복귀 하지 않으면 탈주로 간주하겠다는 경고성 있는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함선을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은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어떠한 명령을 받아 움직이더라도 항로를 조정해 꼭 그 자리에 다시 와 또 똑같이 통신을 보내고 그를 추적했다. 이쯤 되면 제가 죽었거니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러질 않았다. 그러기를 1년이다. 스콧은 파란 줄을 당겨가며 자신 없이 흘러가는 엔터프라이즈와 커크의 시간을 훑어보았다. 마치 익숙한 사람들이 나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기 짝이 없었다. 스콧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블랙홀이 데려다 놓은 이 고차원 공간이, 자신에게 과거와 제가 없는 시간들을 보여주는 이유가, 그 시간의 흐름이 왜 커크와 연결 되어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공간이 기어이 통신기 앞에 술에 절어 울고 있는 커크를 보였을 땐, 이렇게 저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를 보느니 차라리 스스로 제 목을 졸라 죽어지고 싶었다.
"....사랑해, 몬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몬티, 몽고메리 스코티. 사랑해. 후윽... 사랑해. 사랑..."
침대 위에서 잠결에라도 아까워하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는 낭비하듯 토해내며 울고 있는 커크의 모습은 작아보였다. 그는 통신을 끈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스콧에게 항상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그였는데, 그런 그가 지금은 어린 아이처럼 연약해 보였다. 닿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스콧은 손을 뻗었다. 벽에 막힌 그의 손앞에 울고 있는 얼굴이 보이는 데도 그 눈물을 닦아줄 수가 없었다.
"알아요, 짐, 사랑해요, 말 못해줘서 미안해요.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그래서 말 못했어요. 내가 당신이 스치는 수많은 잠자리 상대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흐읍, 그래서어... 술에 절어 욕심이 났나봐... 근데 그렇게 사고를 치고 나서도 모른 척 했어요. 겁이 나서. 당신이 내가 싫다고 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흑, 나는... 짐, 나느은...."
눈 밑에 차오른 눈물이 볼 위를 흐른다. 닿지 않는 두 사람의 고백과 눈물이 같은 공간 안에 다른 차원의 벽에 막혀 닿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이 겹치고 또 겹쳐서 곁에 있는 누군가가 듣는다면 절절한 연인 사이처럼 보일 법도 한데 그러질 못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침대에서 그를 모른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눈앞에 있는 그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럼 상황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시간을 잡을 수 있음에도 과거를 바꿀 수 없는 제 무능함을 알면서도 스콧은 저를 탓하며 가슴 속에 울분을 눈물로 토해냈다.
한참을 울던 커크가 자리에서 비척이듯 일어났다. 스콧은 더듬더듬 앞을 가로 막는 벽을 따라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본다. 가지 마요. 가지 마요. 그는 덜덜 떠는 입술로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 가지 마요. 그렇게 다시 한 번 말했을 때, 커크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스콧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착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 목소리가 전해졌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커크는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스콧을 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방금 등진 통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콧의 시선이 커크를 따라 통신기로 향한다. 꺼진 통신기에 불이 들어온다. 지직거리며 화면이 돌아오더니 막 전송된 메세지가 화면 위에 떴다. 그 화면을 본 커크의 눈이 놀랄 만큼 커졌다. 그것은 스콧 역시 마찬가지였다.
[MESSAGE 1. 좋아요, 제군들. 오랜만이에요. 이 메세지가 전해진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길 바래요. 나는...]
화면 위에는 시간의 계산상으로는 절대 지금 도달할 리 없는 메세지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커크의 메세지 이후 넵티스의 시간으로 한 시간 반, 외부의 시간으로는 약 2년 이상이 지난 이 후에 제가 전송했던 메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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