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ert Flower 5
( James T. Kirk X Montgomery Scott )
We will find hope in the Impossible.
***
커크가 달린다. 달리는 커크를 따라 스콧의 앞 배경들이 휙휙 바뀌기 시작했다. 바닥을 딛는 그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다급하고 힘찼다. 지나가던 크루들이 어깨를 부딪쳐 넘어지는 대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들고 있던 패드를 손에 꾹 쥔 채 브릿지로 향했다. 브릿지의 문이 열린다. 크루들이 놀란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본다.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엉망이다. 눈은 충혈된 채 퉁퉁 부어있었고, 눈물로 얼룩진 볼은 엉망이었다. 흥분으로 붉어진 얼굴은 곧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그가 던진 말에 이젠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헉헉거리는 숨을 내쉬며 커크가 말했다.
"스코티가 살아있어."
꺼졌던 희망이 서서히 빛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
"흥미롭군요."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흥미를 붙이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패드 위에 떠오르는 메세지를 본 스팍이 긴 검지로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옆에 있던 본즈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채 그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신경쓰지도 않은 채 스팍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커크가 그런 스팍을 보았다. 왜 그래? 짓무른 눈에 물기가 아직도 마르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또렷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술기운에 밀려온 슬픔은 밀려나간 지 오래고 이제는 얇게나마 잡고 있는 단 한 가지 희망을 향한 갈망만이 그 안에 드리워져 있었다.
"제 말은 상황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단 말입니다. 모든 선체에서 보내는 메세지에는 시간이 찍혀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메세지는 그 사건으로부터 5시간 23분 뒤에 보내진 것입니다. 아누비스의 중력 에너지와 넵티스의 자전주기를 따졌을 때, 시간의 흐름상 이 메세지가 지금 도착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잠깐,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블랙홀의 영향을 받아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아. 근데 그게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스코티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넵티스라고 확신을 하지?"
"배경을 보세요. 바닥에 깔려 있는 파란색 모래 보여요? 아마도 밖에서 셔틀 선체로 밀려 들어온 게 분명해요. 페이저를 맞은 스콧의 셔틀은 이시스를 지나쳤어요. 블랙홀의 영향권에 있으면서 이시스보다 더 블랙홀에 가까이 있는 행성은 눈이에요. 하지만 눈은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이니 모래가 있을 리 없죠. 그렇다면 행성 외에 그런 환경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따진다면 그건 위성들뿐이에요. 이시스의 위성 세 개, 눈의 위성 다섯 개 중 파란색 모래가 존재하는 곳은 단 하나 넵티스 밖에 없어요."
커크의 물음에 똑 부러지는 말로 캐롤이 답했다. 동시에 그녀는 패드 위에 아누비스와 넵티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의 위치가 그려진 시뮬레이션을 화면 위로 띄워 올렸다.
"맞아요. 시간의 상대성. 현재 넵티스의 위치는 아누비스의 대기권에 거의 근접해 있어요. 그래서 자전주기가 빠르고 그만큼 여기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게 되는 거죠. 즉, 지금 시점으로 봤을 때 그 곳에서의 한 시간이 이 곳에서 6개월 정도라고 할 수 있죠. 그 일이 일어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처음시점에서의 시간의 차이까지 따졌을 때, 넵티스의 시간은 그 때로 부터 3시간이 흘렀어야 해요. 문제는 이 메세지가 5시간 23분 뒤에 전송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중력 에너지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까지 고려한다고 한다면 이 메세지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은 족히 2년하고도 4개월 후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네 말은..."
"네, 시간 흐름이 맞질 않아요. 이건 약 2년 뒤의 스콧 소령님이 과거로 쏘아올린 메세지니까요."
캐롤의 말 맺음에 스팍은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는 침묵했다. 커크는 연신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 거렸다. 그 사이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던 체콥이 손을 번쩍 들었다. 커크 만큼이나 죽상을 하고 있던 그는 스콧의 생존 소식을 들은 이후로 급격하게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의 볼은 어느 때보다 붉게 홍조가 되어 있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서 논하는 동안 스콧이 보내온 아문족의 데이터를 연신 분석하고 있었다.
"캡띤, 제 생각에는 스꼿 소령님은 아문 족 통신 기술을 이용한 것 같씀니다. 기본적으로 각 커뮤니케이터에서 쏘아진 전파가 기지국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통신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거리가 멀 수록 통하는 기지국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는 건 알아, 체콥. 요점만 말해. "
"만약 기지국을 거치지 않고 통신이 닿는 곳까지 웜홀을 만들어 직접 전파를 쏜다면."
"그만큼 빠르게 이동하게 되겠... 잠깐, 웜홀이라고?"
"네, 캡띤, 소령님이 만든 트랜스 워프 공식을 조금 더 발전시킨 겁니다. 워프가 단순히 움직이는 공간 내에서의 분자 데이터 전송이라고 한다면, 이건 은하계에서 은하계까지로의 먼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 조절해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럼 스콧이 일부러 메세지를 과거로 보냈다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공식 상으로는 시간을 조절한다고 해봐야 조금 더 데이터를 빨리 전송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씁니다. 아마 스꼿소령님이 공식 적용을 하다가 어디서 오류가 난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이론대로라면 말이 되긴 하네요. 안 그래도 이상하긴 했거든요. 본부에서 이시스까지 일주일이 걸렸어요. 그만큼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들은 상황 파악을 하자마자 바로 우리한테 통신을 보낼 수 있었잖아요. 거리상으로 봤을 땐 통신이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없는데도 말이죠. 그 말은 즉, 그들은 원하는 장소와 시간으로 향하는 샛길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책상을 주먹으로 탕 내려치며 우후라가 체콥의 말에 첨언을 던졌다.
"그럼 웜홀을 통해 통신전파를 보냈던 것처럼 분자데이터를 전송시켜서 스콧을 빔업 시킬 수 있지 않아?"
"불가능합니다. 우선 소령의 위치가 넵티스라는 것을 알지만 정확한 좌표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생체 스캔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현재 위치로는 불가능하고 넵티스로 더 다가갔다가는 우리마저 블랙홀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불완전한 공식을 적용했다가는 분자화 되어 영원히 그를 찾지 못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성공 확률은?"
"0.231%."
"다른 방법은?"
"...."
"...지금 저 밖에 스콧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젠장! 욕지기를 하며 커크가 발로 의자를 걷어 차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거센 타격음이 일었다. 아까까지 희망으로 반짝거리던 눈이 이제는 초조함과 분노로 흔들리고 있었다. 침울하기는 다른 크루들 역시 마찬가지다. 패드 위에는 스콧이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제 감정을 지운 채 여상한 듯 말하고 있는 스콧의 얼굴은 누가 봐도 그가 뱉어내는 말들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죽은 줄 알았다면 누구도 이만큼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수가 떠오르지 않았고, 초조하게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 밖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스콧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시간 따위를 생각해서 일부러 메세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없었고 급했고 그러다보니 모든 데이터를 다 훑어볼만한 여력이 없었기에 그저 제대로 전달이 되기만을 바랬을 뿐 이렇게 의미 없는 희망과 그에 따르는 절망을 안겨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포기 해줬으면. 스콧은 생각했다. 실체 없는 세계에서 유령처럼 산다고 해도 어쨌든 그들을 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아주 운이 나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만약...."
그 긴 침묵 속에서 운을 뗀 것은 아까부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술루였다.
"시공간 좌표를 지정해 웜홀을 만들 수 있다면 크게도 만들 수 있나요? 예를 들어 함선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이요."
"과거 로뮬란과 스팍 대사가 붉은 물질을 이용해 인공적인 블랙홀을 만들었던 걸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안정화를 시키려면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인공적이긴 하나 블랙홀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오지 않은 미래를 바꾸었던 사건을 떠올린다면 로뮬란이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의도해서 과거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과거로 오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고 그 우연이 미래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커크는 멀쩡히 살 수 있었던 아버지를 잃었고, 스팍은 자신의 고향별을 송두리째 잃고 말았다. 술루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추측하던 스팍이 한 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의뭉스럽게 물었다.
"설마 과거로 돌아가서 스콧을 구하자는 것은..."
"그게 아니라, 봐요. 저기 저 블랙홀이 생긴 건 행성 같지만 실제는 중력을 가지고 시공간을 뒤틀고 있는 거대한 구멍이잖아요. 한마디로 고차원 적인 통로 같은 거죠. 통로의 입구가 있다면 당연히 출구도 있을 겁니다. 넵티스가 블랙홀에 흡수된다면 소령님 역시 블랙홀로 흡수되었다가 다른 쪽 출구로 나오게 될 거고요."
"문제는 그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시간도 장소도 없는데 워프를 열 수는..."
"만약 넵티스가 흡수되는 시점에 맞춰 우리도 같이 블랙홀에 같이 들어간다면요? 출구 밖으로 나와 거기서 소령님을 데리고 다시 출발했던 시점으로 워프하는 것은요?"
하얀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한 술루는 이내 어깨를 으쓱 하며 덧붙였다.
"출발 시점의 시간과 장소는 알고 있잖아요?"
간단하지만 위험한 그 이론에 크루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이 아주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패하게 될 경우에 따르는 데미지도 컸다. 블랙홀에 휩쓸려간 스콧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을지도 미지수였고, 어설프게 블랙홀에 접근만 하고 나왔을 때 입을 수 있는 시간적 데미지도 컸다. 무엇보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공간을 지나 낯선 곳으로 나와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역시도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희생에 따르는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이 함선에 타고 있는 모든 크루 본인들이었다. 그리고 커크는 그 희생을 모든 이에게 강요할 만큼 이기적인 사령관은 아니었다.
"안 돼."
딱 잘라 하는 대답에 본즈가 인상을 구겼다.
"잠깐, 너 혼자 가겠단 말은 하지 마. 그리고 너만 스콧을 구하고 싶은 것도 아니야. 우리 모두가 그래."
"그래도 안 돼. 스콧이 블랙홀에 흡수돼서 멀쩡하게 나올 거란 보장도 없는데 크루 전체를 희생시킬 순 없어."
이를 악 물며 고개를 젓는 커크를 보며 모두가 묵직한 한 숨을 쉰다. 그가 하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그의 명령을 따라줄 의향은 없어 보였다. 캐롤은 어깨를 으쓱 하더니 공식을 재검토해야겠다며 스팍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고, 본즈는 앞으로 필요할 상비약을 점검해야겠다며 채플을 끌고 메이데이로 가버렸다. 체콥은 스콧이 보내준 데이터를 분석하느라 연신 중얼거리고 있느라 커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옆에서 그를 돕고 있는 우후라 역시 마찬가지다. 함장의 말을 무시한 채 각자 해야 할 일로 돌아가 버리는 크루들을 보며 커크는 화를 내야할지 뜯어 말리며 애원이라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의견을 제시했던 술루가 그런 커크를 보며 어깨를 으쓱 한다.
"달리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
"스콧을 살리고 싶은 건 내 고집이야. 만약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한다면 나 혼자 갈거야. 너희들은...."
"캡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알겠는데, 혼자서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리입니다."
"술루, 임무를 실패한다면 영영 가족들과 헤어져야 할 수도 있어. 난 그걸 강요하고 싶지 않아!!"
"누가 그럽니까? 제가 벤과 데보라와 헤어져야 한다고."
답지 않게 코웃음을 치며 술루가 자신만만하게 쏘아 붙였다.
"반드시 돌아 올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말이 누구보다 확신에 차있어서 커크는 차마 더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
스콧은 기적을 믿는 부류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그는 어떤 특정 종교를 믿지도 않았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 제 인생이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모든 일이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 안에서의 기회만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기적이라는 것은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주워지는 보너스 같은 것이지 힘없는 저에겐 누가 공짜 선물처럼 던져주는 그런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델타베가에서 커크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는 파란 줄을 당긴다. 그가 당기는 속도에 맞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시간과 함께 커크 역시 바뀌어간다. 그는 엔터프라이즈에 있을 때도 있었고, 스타플릿 회의실에도 있었으며, 자신의 숙소나 또는 자주 가는 바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지나가는 장면들마다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마지막 봤을 때 커크의 모습 보다는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그만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커크는 스콧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패드에는 항상 크루들이 보내주는 연구 진행 방향에 대한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고, 술을 마실 때면 스콧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이쯤 되니 그가 정말 자신을 사랑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제 과실에 대한 집착인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과실에 대한 집착을 말하자면, 스코티는 그 예가 된 남자를 알고 있다. 스코틀랜드 오지에서 갓 미국으로 날아와 연고 하나 없는 그를 거둬준 아처 제독을. 제독은 그가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라고 했다. 제독은 어수룩한 그를 아카데미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그가 하는 연구의 대부분을 지원해 주었다. 주말이면 그의 집에서 그의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가정의 따뜻함이 그리웠던 스콧이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스콧은 만약 다시 한 번 아처를 만난다면 묻고 싶었다. 정말 저를 자식처럼 생각하기는 했는지, 아니면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저를 이용하기 위해 선심을 보였던 것뿐인지.
하지만 그 답이 어찌되었던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갈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스콧은 아처의 야망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것이 그저 신분 높은 사람들이 한 번 쯤 가질 수 있는 과오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연구한 것들이 아처의 손에 몰래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척 했던 것은 다 그런 이유였다. 그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는 좋은 사람이니 언젠가는 정신을 차릴 거라고. 하지만 그것이 전쟁을 위한 무기로 쓰이게 된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스콧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연구 데이터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 칩을 아처가 가장 아끼는 비글의 목줄에 집어넣었다. 포토로스는 아처에게도 스콧에게도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스콧의 희망은 바람 앞에 불씨처럼 꺼져 들어갔고 온전하지 않은 트랜스워프 공식이 그 비글을 어떻게 만들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처는 그 길로 스콧에게 시답지 않은 누명을 씌워 델타베가로 유배시켰다. 키워준 주인에게 복종하지 못하는 개를 버리는 것처럼, 스콧을, 그리고 자신의 위대한 일생에 남은 과오의 흔적을 자신에게서 떨어진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커크에 의해 스콧이 거둬지고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던 마커스 제독이 칸에 의해 사망하면서 아처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오점을 알고 있는 스콧이 점점 커가는 것이 언젠가 제 목을 내려칠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어쩌면, 아처는 그 때 페이저를 스콧에게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비해서 커크의 과실은 지나치게 작았다. 위험할 걸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스콧을 말리지 못했고, 기어이 그를 잃고 만 것은 온전한 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스콧의 착오였고, 일을 벌인 아처의 죄가 컸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일을 '자신의 책임'이라 부르며 긴 시간동안 스콧을 놓지 않았다. 왜? 라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닿지 않아 물을 수도 없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화학적 작용이 진행되는 사랑의 깊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더욱이 쉽게 꺼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죄책감이 아니라면, 그에 따르는 집착과 오기가 아니라면, 이것은 분명...
차원을 넘나드는 이 공간이 스콧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무엇을 위해 만들어 졌는지, 아니면 그저 블랙홀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이 공간은 오로지 커크와 자신을 잇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왜 하필 그여야만 했을까? 그는 제 가슴에서 이어지는 파란색 끈을 본다. 이건 단순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끊어지지 않고 단단함을 유지한 채 그를 커크의 시간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이것은 분명...
문득 아까까지 느끼지 못했던, 그저 잡고 당기기만 있던 파란색 끈 너머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걸 느끼는 스콧의 박동이 세차게 뛴다. 자신의 갈비뼈 안 쪽과 비슷하게 뛰고 있는 이것은 분명 커크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말로 형용할 수는 없었지만, 그 박동 너머로 스콧은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절하게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놓지 못하는 그의 애절하다 못해 간곡한 그 마음을. 그러자 말라붙었던 눈가가 화끈해지고 스콧은 다시 눈물을 쏟아낸다.
당신이 내 기적이었어.
결국 그 마음이 곧 그를 살리게 하는 기적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는 사랑뿐이라...
***
캡틴 온 더 브릿지- 여상한 듯한 체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릿지로 들어오는 커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임펄스 엔진 시스템 올 클리어, 무기와 실드 대기중, 통제소 준비 완료, 킨저, 워프 코어는? Ready. 본즈, 안전벨트. 웜홀 좌표설정 완료입니다... 발진을 준비하는 크루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울린다. 함장 석에 앉아 커크는 새파란 눈으로 선체 밖에서 기괴하게 돌고 있는 블랙홀을 본다. 블랙홀의 대기권으로 서서히 새파란 넵티스가 조각나며 먹히고 있었다. 제발 살아남아 주라. 이를 즈려물며 커크는 기도하듯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더니 우후라에게 선내 방송을 요청했다.
"제군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미션을 앞에 두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스타플릿의 허가를 받은 미션은 아니기 때문에 무사히 다녀와도 징계를 받을 확률이 높겠지만... 하지만 돌아오기만 한다면 함장의 이름을 걸고 그런 번거로운 일은 겪지 않게 만들 테니 부질한 걱정들은 뒤로 미뤄두는 것이 좋을 거야.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저 너머에 우리가 잃었던 오랜 동료이자 친구뿐이니. 우리의 미션은 블랙홀 너머 그를 구출해 다시 이 곳으로 워프해서 돌아오는 것이다. 사태가 불확실한 만큼 성공률을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나를 따라 희생을 감내한 자네들의 용기를 나는 충분히 높게 사고 있다. 나는 우리가 충분히 해내리라고 믿는다.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경험과 여기까지 오게 된 믿음을 전제로 한다면. 그러니 제군들."
브릿지의 모든 이들이 긴장감이 만연한 얼굴로 커크를 보았고,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무리 짓는다.
"스코티를 포함한 우리 모두, 일주일 뒤 데모라의 졸업식에서 다시 봅시다, 커크 아웃."
그 말에 술루가 씨익 웃으며 다시 정면을 향해 고개를 올린다. 자, 그럼 갈까? 커크의 말에 술루가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는다. 항로를 블랙홀 정면으로 설정하고 최대 속력으로 워프를 가동시켰다. 정면의 화면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곧이어 선체가 앞으로 쏠리며 빠르게 블랙홀을 향해 발진한다. 워프의 속도와 블랙홀의 인력이 부딪히며 점점 선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압박 때문에 의자 등받이에 허리가 바짝 붙는다. 신음과 앓는 소리가 가득한데도 크루들 전원이 점점 가까워지는 아누비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흡수한 빛을 내뿜는 아누비스의 대기권으로 진입하자 흔들림은 더 심해졌다. 선체 밖으로 가루가 되어 부서져가는 넵티스의 모습이 보였다. 압박을 견디지 못해 진동이 더욱 심해지자 선체에 적색경보가 떴다. 재빠르게 술루는 손을 뻗어 선체를 블랙홀의 회전축에 맞게 살짝 비틀었다. 모두가 억- 소리를 낼 정도로 빠른 방향 전환에 괴로워했지만 곧 그 흐름에 따라가는 선체는 조금씩 고요해졌다. 하지만 적색경보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선체는 요동치며 블랙홀의 대기권 흐름에 따라가며 천천히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의자 손잡이를 꽉 붙잡고 압박을 견뎌내던 스팍이 기를 쓰며 정신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조심하십시오!! 항로가 틀어지면 튕겨 나갈 겁니다!! 벌써 지구 시간으로 60년 정도를 버렸어요!!"
"100살 다되는 노인 치고는 정정하네, 미스터 술루!!!"
"농담 마세요!!!"
필사적으로 방향키를 잡고 있는 술루가 커크의 농담에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그는 최대한 밖으로 밀리는 힘을 견뎌내며 선체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악! 소리를 내며 키를 돌리자 선체가 대기권에서 블랙홀의 표면으로 밀려들어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선체는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흡수된 빛이 번쩍거리며 지나갔고 그 때마다 부서지는 모래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화면 위에 부딪친다. 모래에 파란색 무언가가 섞여있다. 넵티스에서 떨어져 나온 파란 모래들이다. 그것들이 선체 위를 때리고 흩어진다. 어둠과 빛이 섞여있는 것들이 점차 형체를 일그러트린다. 선체 내부에서도 그 일그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공간이 왜곡되고 있었다. 그것들이 선체 밖의 풍경과 내부의 공간 일부를 으그러트리고 있었다.
끈의 벽이 요동쳤다. 스콧은 자신이 있는 이 공간이 점차 빛과 함께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자신을 향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며 그는 공포를 느꼈다. 안 돼. 스콧은 파란색 끈을 생명줄인 냥 부여잡았다. 커크, 짐, 짐!!! 그는 이어진 끈을 중심으로 서로를 막고 있는 차원의 벽을 내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정면만을 보고 있는 커크는 그를 돌아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요동 없던 벽이 파란 끈을 중심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공간 너머의 왜곡처럼 빛과 어둠으로 섞여 이글거린다. 스콧은 그 수은을 뭉쳐놓은 것 처럼 이제는 액체와도 같이 느껴지는 벽에 저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가져간다. 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고 저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처럼 빛의 일그러짐이 스콧의 손가락 끝을 문다.
그 순간 커크가 그를 돌아본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옆에서 일그러지고 있는 공간의 왜곡을 본다. 커크의 손끝이 그 곳으로 향한다. 캡틴! 이를 말리듯 뒤에서 스팍이 소리쳤지만 자석에 이끌리는 철처럼 손가락은 그 왜곡된 빛에 닿는다. 빛의 끝이 손가락 끝을 잡는다. 닿는다. 일그러지고 있는 차원의 벽을 두고 두 손 끝이 빛이 겹쳐지듯 한 곳에서 닿는다.
"스코티?"
무엇인지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커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콧은 가빠오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나를 알아차렸어. 완전히 닿을 수 없는, 하지만 겹쳐지는 시선과 손끝, 그것만으로도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부르지도 못한 채 정신을 온전하게 잡는 데만 노력하고 있는 그를 향해 커크가 웃었다.
"기다려."
그게 정말 스콧에게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블랙홀을 통과한다는 감상에 젖어 홀로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만으로도 스콧은 이 공간이 무너지는 한 가운데에서도 어쩐지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억-허억- 점차 숨이 가빠진다. 일그러지는 공간들이 점차 넓어지고 이내 벽 너머의 공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들이 파도처럼 요동치다가 곧 빛으로 번진다. 그는 따뜻한 빛 안에 안겨있다. 바닥이 꺼지는 것처럼 몸이 추락한다. 허덕이는 숨이 자꾸 헛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 안 쪽 성대가 움직이질 않았다. 무언가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것 같은 강한 압박에 스콧은 이기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었다.
곧-
어둠이 찾아왔다.
***
우리는 답을 찾게 될 거에요.
늘 그랬듯이.
***
삐익- 삐익- 귓가에 닿는 경고음 소리에 스콧은 서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헬멧 너머로 보이는 검은 우주다. 아주 익숙하고도 낯선 우주를 보며 그는 정처 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헬멧 위 뜨는 경고에는 산소가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5분 안에 누군가 그를 발견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대로 질식사할 것이다. 하지만 스콧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빛 때문이다. 옆으로부터 눈을 부시게 해는 빛을 향해 그는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점멸하고 다시 또렷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 안에서 스콧은 익숙한 색을 보았다. 저를 향하고 있는 두 쌍의 파란색 빛.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는 선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선체 양 옆에 달려있는 새파란 워프 엔진이 어둠을 밝히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인 것처럼 흔들림 없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점점 그 빛이 가까워지며 스콧의 시야를 파랗게 물들였다. 그 빛에 바래지는 시야 탓인지 눈이 자꾸 감긴다. 눈이 감기자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부족한 산소로 인해 멍해지는 정신으로 스콧은 살풋 웃음을 짓는다. 삐익- 삐익- 울리는 경고음 너머 스코티- 하고 저 파란 빛 너머의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갈라지고 흐려지는 목소리로 그가 답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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