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And Beautiful 03

( Steve Rogers, Bucky Barnes X Tony Stark )











모처럼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심지어 화목을 포장하기 위해 하워드가 주최한 가족간의 아침식사에 반 강제적으로 참여했음에도 토니는 즐거웠다. 반대편에 앉은 버키는 누가봐도 어제 잠을 잘 못잔 티가 났다. 그리고 토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걸 눈치챈 토니는 일부로 버키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후추 통 좀 집어 주세요. 엉덩이만 조금 떼면 잡힐 거리였지만 제법 예의 바르고 예쁘게 하는 말에 버키는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후추통을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보며 잠을 못 잤냐고 묻는 스티브의 걱정스런 말에 버키는 슬쩍 토니를 보았다. 요망하게도 토니는 입술에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았고 덕분에 버키는 당황해서 들고 있던 나이프를 놓쳤다. 토니는 박장 대소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샐러드를 입 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아유 샘통이다.


거기다가 식사 중간 찾아온 찰스의 등장은 그야말로 완벽해서 토니는 하마터면 모두가 있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키스세례를 퍼부울 뻔 했다. 찰스~ 마리아가 반가운 듯 그의 이름을 말했을 때 버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봐줄 만 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잘생긴 남자는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었고 그런 그와 토니를 번갈아 보는 버키의 표정은 얼이 나가 있었다. 아마도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린 듯 둘이서 방에 들어가 놀겠다는 말에 뭐라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며 토니가 윙크를 하는 통에 다시 닫아버렸지만.



"너, 아주 제대로 놀려 먹었구나?"



찰스랑 놀거에요, 둘이서. 그렇게 말하며 지루한 식사 시간을 벗어난 토니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를 뒹굴며 깔깔거렸다. 그런 그를 보면서 찰스는 한숨을 폭 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뒹굴고 있는 토니의 침대 옆자리에 누웠고, 한참 웃던 토니는 그런 찰스의 배 위로 올라와 앉았다.



"뭐, 별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아까 둘이서 논다니까 지었던 표정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구..."

"목표는 금발 쪽 아니었어?"

"그게 자꾸 얄밉게 약을 올리잖아!"

"그래, 됐으니까 이리로 와봐."



팔랑팔랑 손짓을 하는 찰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토니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고 뒷머리를 잡아 끄는 손에 순순히 응했다. 아이 달래 듯 입술 위를 부드럽게 더듬다가 혀 끝으로 아랫입술을 톡톡 쳤다. 어쩜 젠틀하기도 하지. 새삼 감탄을 하며 토니가 입을 열었고 혀 끝이 닿았다. 간질간질할 정도로 느긋하고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고양된 기분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했다.


처음은 언제였나, 토니는 생각나지 않는 과거를 떠올렸다. 아마 영화를 보다가였나, 아니면 기숙학교 가기 싫다고 엉엉 울고 있을 때였나? 뭐가 되었던 시작은 찰스였던 것이 분명했다. 연애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둘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친구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었고 키스 이상의 것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토니는 이 관계가 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찰스가 자신에게 가지는 감정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로 걸고 넘어지진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찰스는 가장 아끼는 보물이었고,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말을 꺼내서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소독."



길고 늘어지는 키스를 하고 입을 뗀 찰스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을때, 어차피 누구한테 줄 거 얘한테 내 처음까지 줘버릴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만큼 다정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분은 갑자기 열리는 문 때문에 산통이 다 깨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삐딱하게 문에 기대어 있는 버키가 있었다. 누가봐도 심기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선 토니와 그 아래 있는 찰스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노크 할 줄 몰라요? 딴 짓이라도 했으면 어떡하려고?"



허세 넘치게 토니가 쏘아 붙였다. 하지만 버키는 토니를 한 번 쓱 보더니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찰스를 향해 말했다.



"마리아가 불러. 차 마시자고."

"난 안갈래. 찰스 너나 가."

"토니."

"보나마나 아빠가 자랑질 하려고 부르는 거야. 내 친구 캡틴 아메리카와 그걸 만든 자랑스러운 나! 그 꼴을 어떻게 봐? 완전 싫어. 밥 맛이야. 예의 바른 네가 가서 맞장구라도 쳐줘. 내 욕 하는지 안하는지 감시도 하고."



뾰루퉁해져선 찰스의 몸에서 내려와 등 돌리고 누워버리는 것으로 토니는 그깟 거지같은 티타임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이런 상태의 토니를 달래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아는 찰스는 그래, 라고 짧게 한 마디 하며 토니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쭉 보고 있는 버키를 향해 살짝 웃어보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일종의 우월감에서 나오는 미소 같은 거.


찰스가 1층으로 내려가고 같이 갈 것이라 생각했던 버키는 여전히 문가에 있었다. 그는 찰스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토니의 방으로 들어왔다. 달칵- 문 잠기는 소리가 났고 뚱하니 등을 돌리고 있던 토니가 그제야 돌아서 그를 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고 살짝 겁먹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애써 티내지 않고 왜 안 나가냐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너, 쟤랑 무슨 사이야? 애인 사이?”

“그건 왜 물어요? 설마 키스 한 번 했다고 꼴사납게 질투 하는 건 아니죠?”

“질투가 아니라 걱정되서 그래. 이러다 하워드한테 들키면 어쩔려고 그래?”

“아빤 내가 여자한테 박든 남자한테 박히든 별로 신경 안쓸 걸요?”

“야, 넌 무슨 말을…”

“불편하면 나가시던지.”

“뭐?”



히죽 웃는다.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며 원하는 바를 정확히 다시 이야기 해준다.



“불편하면 나가시라고요. 그쪽 친구 손 잡고.”



허- 버키는 뒷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에 헛웃음을 쳤다. 자기는 나름 신경써서 배려해준다고 어제 일도 없던 일로 하고 너랑 찰스인지 뭐시긴지 관계도 비밀로 해줄게, 라고 말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저 영악한 머리에서 나온 함정에 홀랑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치켜 들었던 가운데 손가락은 절대적인 적의였다. 우리집에서 좀 꺼져 달라는.



“그쪽들 나갈때까지 난 매일 매일 찰스를 부를 거고, 더 한 것도 할거에요. 당신을 아아주우- 힘들게 만들 자신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쓰이고 불편하면 그 쪽이 먼저 엉덩이를 떼야 하지 않겠어요?”

“너.. 진짜 못되 먹었구나?”

“네. 전 못되고 나빴어요. 처음 듣는 말은 아니라서 신선하진 않네요. 할 말 마쳤으면 나가보시죠? 안나가면 여기서 옷 홀딱 벗고 소리지를 거에요.”



진짜 막장 드라마 한 번 찍어 볼래요? 라고 하는 것 같은 비장한 눈빛에 버키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방에서 나와야 했다. 닫힌 방 문 너머로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어제 그냥 잠이나 잘 걸. 부엌까지 내려가 그런 상황을 만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한참이나 어린 꼬마애에게 휘둘린 탓에 짓밟힌 자존심까지, 버키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했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 없이 대뜸 여길 나가자고 하기엔 하워드가 배푸는 친절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그랬다간 자기 자존심이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아- 몰라. 해결책 없는 답에 결국 더 생각하기를 포기한 버키는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중간 쯤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찰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다. 더이상의 패배감은 사양이었다.






***






요즘 들어서 영 이상하다. 스티브는 사회 적응용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옆에 앉아있는 친구를 힐끔 쳐다보았다. 하워드의 집에서 기거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그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기에 주력하며 하루를 보내왔다. 하루에도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봐야 했고, 40여년간의 비어있는 역사 강의와 몸을 단련하기 위한 헬스 트레이닝까지 알찬 스케줄을 마치면 저녁때는 피곤함에 꿈도 꾸지 않고 잠에 들었다. 그런 규칙적인 생활 덕분인지 스티브의 혈색은 날로 좋아지고 있었다. 반면, 버키는 잠을 설치는 건지, 안색이 흐린데다가 약간 초조한 기색을 늘상 내뿜고 있었다.


적응이 안되어서 그러는 거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자신만 해도 전장터에서 누비다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해 잠 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오늘 아침식사만 해도 그랬다. 같은 시간에 이루어진 식사 시간 동안 버키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게 누구냐고 하면 하워드의 아들 새파란 꼬맹이 토니 스타크였다. 하지만 그 애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진 않았다. 그저 아침마다 찾아오는 친구 찰스와 식사를 마치고 방 안에서 얌전히 노는 것 말고는 달리 하는 일도 없었고, 처음 만남때 처럼 아버지의 말에 톡톡 쏘는 말대꾸를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지만 괜히 자신이 과민반응을 하는 건가 싶어서 부러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도 2층으로 올라가는 토니와 찰스를 향한 버키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분명 뭔가 있는거다. 저 맹랑한 꼬마랑 친우 사이에.


하지만 애써 스티브가 입을 떼기도 전에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던 버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티브."

"어?"

"만약에 말야 누군가가 너한테 상대도 하기 싫을 정도의 유치한 시비를 걸면 어떡할래?"

"뭐.. 정도가 어느정도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왜?"

"근데 유치한데, 묘하게 신경쓰이게 한단 말야. 자존심도 좀 상하고."

"버키, 무슨 일이야?"

"무시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단 말이지..."



중얼중얼 음산하게 하는 말에 스티브는 등이 쭈뻣 서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오랜 친구 버키는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젠틀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한 번 오기가 생기면 고민 없이 뛰어 드는 성향이 있었다. 그랬기에 전장에서 과감한 선택으로 자신의 의사를 지지해주었고 작정 수행에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지금 버키의 눈빛이 딱 작전 수행하기 전의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단호하고 옹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이거야."



흐흐흐- 버키가 음산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 스티브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치가 빠르단 말은 별로 들어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순간 만큼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몸이 노곤노곤한 기운에 토니는 눈을 반쯤 감튼 채 침대로 뛰어 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늘어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충독이 된 탓인지 자꾸 졸음이 밀려왔다. 토니는 요 일주일을 꽤 보람차게 보냈다고 생각했다. 아직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쾌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찰스는 자기보고 성격이 나쁘다고 했다. 하지만 토니는 항상 그렇게 자라왔다. 원하는 건 가져야 했고 바라는 건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은 토니가 그토록 바랬지만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 이제와서 준다고 해도 고맙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지난 세월 시달린 것을 포함해 이제는 자신의 삶에 개입하기까지 하는 것에 심통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샤워 후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아 바스로브를 입은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여름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정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수면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단 잠을 깨운 것은 제 몸을 누르는 묵직한 느낌 때문이었다. 어깨를 잡는 아귀힘에 퍼득 정신이 들었고 제 얼굴 위에 드리우는 얼굴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손으로 입을 막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쉬잇-"



조용히 하라는 듯 귓가에 들리는 속삭임에 소름이 돋았다. 눈꺼풀을 누르던 졸음이 달아났고, 어둠에 익숙해지는 시야 위 점점 얼굴의 윤곽선이 드러났다. 아, 좆됬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그거였다. 어째 고분고분 당해준다 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야밤에 자기 방으로 몰래 들어올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부질 없이 팔로 그를 밀어 보았지만 재빠르게 두 손목을 그러쥐고 누르는 탓에 그것마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토니는 반항을 멈췄다. 사실 한 손에 제 두 팔목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해야했다.



"생각해보니까 억울해서."

"...."

"당하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



씨익- 입꼬리를 올려 매력적으로 웃는다. 입을 막은 손이 떨어졌고 무어라 시인을 해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먹혔다. 입을 연 틈을 타 비집고 들어오는 두꺼운 혀의 느낌에 토니는 진저리를 쳤다. 지금껏 찰스와 했던 다정한 입맞춤과는 달랐다. 질척하고 끈적했으며 너무 뜨거웠다. 혀를 얽혀 빨아들이는 그 느낌에 몸에 소름이 돋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입술을 깨무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벌어진 바스 로브 사이로 손이 들어왔고 밤공기로 식은 체온 위로 닿는 커다란 손이 너무 뜨거워 토니는 저도 모르게 콧소리를 냈다. 흐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낯설어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히자 닿은 입술 사이로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덜컥 겁이났다. 상대는 저보다 훨씬 어른이었고 노련했다. 이대로라면 홀랑 잡아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비틀어봐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입술과 피부 위를 더듬는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더 무서웠던 것은 이 낯선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는 자신 때문이었다.



"후읏, 나쁜, 개, 자식아-"

"응, 예쁘게 말해야지, 후으, 입 좀 더 벌려봐."

"시이..러, 앗, 너무, 뜨겁단 마랴아."

"착하다, 응?"



고개를 돌린 틈을 타 항의를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잡은 손목을 목에 두르게 하고, 입술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혀를 눌렀다. 억지로 벌어진 입술사이로 뜨거운 입김과 함께 다시 눅눅한 혀가 밀려들어온다. 숨이 막혀서 토니는 밀어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버키의 목을 끌어 안았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정신이 아득했다. 혈관의 피가 날뛰는 것 같았고, 심장은 너무 세게 뛰어 아플 정도였다. 이러다가 터질 지도 몰라. 더럭 겁을 먹고 더욱 매달리자 그제야 몰아붙이던 움직임이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졌다. 목구멍까지 들어찼던 혀가 깨문 입술 자리를 핥았고 이내 촉촉하게 여린 입술 위를 더듬었다. 물기 어린 촉촉 거리는 입맞춤을 몇 번 하고 나서야 버키는 고개를 들었다. 허덕이는 숨을 쉬는 팔 아래 토니가 한껏 흐트러져 있었다. 그게 꽤 보기 좋아 버키는 히죽 웃었다.



"복수를, 흐으.. 이딴식으로 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숨을 고르며 토니가 신경질을 냈다. 버키는 그런 토니의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꽤나 다정한 손에 토니는 저항하는 것을 잊은 듯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걔랑 어디 까지 했어?"

"찰스는 당신따위랑 달라.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안 해."

"미성년자야? 소꿉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미친, 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나도 스티브랑 제일 친한데 니들 같은 짓 안 해. 그거 비정상이야."

"당신은? 당신은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러고 있잖아. 당신도 비정상이야."



한 마디를 안지고 따박따박 쏘아 붙이는 말에 버키가 참지 못하고 푸핫- 웃었다. 당돌하고 맹랑하다. 그래서 더 재밌는 거지. 버키는 처음 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보았을 때 자신의 예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튈 지모를 정도로 제 멋데로 행동하고,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놀면서도 가만 보면 그 속이 보인다. 강하게 밀어 붙이면 속절없이 딸려온다. 어린애 같은 그런 점이 마냥 밉지만도 않다. 버키는 이 유치하고 부질 없는 싸움이 꽤 즐겁다고 생각했다.



"그래, 니가 비정상으로 만들어 놨으니 책임도 져줘야지. 먼저 시작한 건 너잖아."

"뭐래, 미쳤..."

"여기."

"..."

"걔가 만진 적 있어?"



단단한 허벅지가 토니의 맨 다리 사이로 파고 들고 손이 로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살집이 있는 엉덩이를 꽉 쥐었다. 단단한 손이 쥐는 노골적인 자리에 토니가 힉 소리를 내며 허리를 뺐다. 하지만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빠지질 않는다. 끙- 앓는 소리를 내며 토니가 버키를 노려 보았다. 머릿 속에 수 많은 계산들이 오갔지만 여기서 뻗댄다고 해서 자신이 이득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칫 잘 못 건들였다가 정말 큰 일을 치르게 생겼으니, 토니는 이번엔 순순히 꼬리를 내리기로 했다. 불쌍한 척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 순종적인 반응에 버키가 만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둔부를 잡은 손을 풀고 말랑한 허벅지를 살살 간질이듯 문질렀다.



"너 걔 오지 말라고 해."

"오면 어떡할건데?"

"걔 올때마다 여기로 올거야."



꽉- 하고 허벅지를 쥔다. 안쪽을 잡아 누르며 다리를 벌리고 허리가 붙는다. 하체가 붙었다. 천을 사이에 두고 뜨겁고 단단한 것이 느껴지자 토니는 저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를 냈다. 벌어지는 입술을 다시 삼켰다. 부드럽게 달래 듯이 아랫 입술을 더듬고 빨아들인다.



"이렇게 너한테 키스하고."



허벅지를 잡은 손이 안 쪽으로 밀려 들어가고 골반께를 문질렀다.



"널 만질거야."

"...으..."

"껍질 째 벗겨져서 홀랑 먹히고 싶음 어디 한 번 해봐."

"...."

"넌 나한테 한 입거리도 안 돼."



명백한 협박이다. 자기한테 당할 때만 해도 멍청한 얼굴을 했던 주제에 뭘 잘 못 먹었는지 이제는 잔득 자신만만해진 얼굴에 토니가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까지 겁먹었던 아이가 신나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모양을 보자 버키도 어이가 없는지 허-하니 웃었다. 요 맹랑한 게 아까까지 겁먹고 고분고분한 척을 하더니 이제는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냥 깔깔거리며 자신을 비웃고 있지 않은가. 흐흐, 하며 들썩이던 웃음이 잦아지고 토니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버키를 올려 보았다.



"그래, 해 봐, 어디. 먹히는 게 나인지 당신인지."



내가 당신 껍질 채 씹어먹어 버릴거야. 


처음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싶었다. 차라리 그 때 좀 참고 순진한 금발을 꼬실걸 하고 조금 후회했던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렇게 굴욕적으로 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오기다. 자신을 협박하는 건방진 인간을 향한 발악이고 콧대를 눌러주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에 이는 묘한 설레임에 몸둘 바를 몰랐다. 토니는 이런게 좋았다.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나무를 뿌리채 흔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항상 승자는 자신이란 사실이 더 끝내 줬다.


그 시건방진 머릿 속을 눈치라도 챘는지 버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가뜩이나 다큐멘터리니 강의니 지루했던 하루가 이제 좀 재밌어 질 것 같았다. 진심으로 즐거운 듯 웃는 모양새가 꼴같지 않았는지 토니가 인상을 찡그렸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씨익 웃었다. 그 작은 머릿속에서 생각한 다음 나올 말이 예상도 되지 않아서 버키는 그 올망진 입술이 열리는 것이 기다려졌다.



"당신이 찰스를 걸고 넘어지니까 하는 말인데, 당신 그 잘난 친구는? 거기 건들면 반칙인가?"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수를 쓰는 아이의 당돌함이 불쾌하기 보다는 흡족했다. 버키는 킬킬 거리며 손으로 토니의 볼께를 살살 쓸었다. 다정하게 구는 것 같던 손이 한 손에 목을 움켜 쥔다. 한 손에 들어오는 목 때문인지, 아니면 겁 모르고 덤비는 아이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한 입에 씹어 삼키고 싶은 충동질과 폭력성이 들끓는다. 버키는 생각했다. 내가 얘를 정복하는 그 순간이 하이드라 기지 하나를 전복시키는 것 보다 더 짜릿할 것 같다고. 하지만 여기서 섣부르게 그걸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버키는 기다릴 줄 알았다. 가장 마지막 순간에 느낄 황홀한 포만감을.



"걔 건드리면."



살짝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귀 힘을 조이며 귓가에 서늘하게 속삭인다.



"넌 죽는 거고."



발가락 끝에서부터 짜릿함이 솓구친다. 귓가에 속삭이는 그 나직한 목소리에 토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토니는 아까 했던 후회를 물렸다. 눈 보이듯 뻔한 순진한 금발이라니, 이것 만큼 재밌는 게임이 또 어딨다고? 이 순간 토니는 제 평생의 버팀목이었던 찰스보다 지금은 버키가 자신을 더 기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토니는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다가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아까의 치미던 폭력성을 지운채 버키 역시 그 입술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섞이는 타액이 독약처럼 달콤했다.


아아- 날 죽여주세요. 

당신한테 삼켜져도 뱃속에서 날뛸 테니까.


삼키는 것은 과연 꿀일까, 독일까?


당장 달달한 연인처럼 입을 맞추면서도 그 답은 버키도 토니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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