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And Beautiful 04
( Steve Rogers, Bucky Barnes X Tony Stark )
복잡한 회로판을 보면서 토니는 생각에 잠겼다. 공구실에 박혀 있는 것은 하워드로부터 내려 받은 천재성 때문에 넘쳐나는 아이디어들을 처리할 곳이 필요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고민이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전자기 회로판 위로 얄미운 얼굴이 겹쳐질 때마다 토니는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던질 뻔 했다.
그러니까 딱 3일이었다. 고집스럽게 찰스를 불러냈던 것은 고작 그 3일이 다였다. 호기롭게 어디 해볼테면 해보라고 했지만 버키는 한 말은 지키는 남자였고 그 역시 3일 내내 토니의 방을 찾았다. 문을 걸어 잠궈도 소용 없었고, 숨어도 어떻게든 그를 찾아내 침대로 끌고 갔다. 그가 내리는 형벌은 지독할 정도로 달콤해서 하마터면 정신을 놓고 그에게 달려들 뻔 했지만 토니의 고고한 자존심은 이를 허용하지 못했다. 아침마다 부운 입술을 하고 나오는 아들을 보며 걱정하는 마리아에게 벌레에 물렸다고 변명을 하면 키득거며 웃는 버키를 더이상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니는 3일만에 작전을 그만 둬야했다. 더이상 올 필요 없다는 토니의 시무룩한 말에 찰스는 그저 웃었다. 당했구나? 그렇게 되묻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내리 4일째 토니는 공구실에 박혀 나가질 않았다. 승리자의 웃음을 짓고 있을 버키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식사는 하녀들이 시간에 맞춰 배달을 해줬지만 접시가 비워져서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원채 예민한 성질 탓에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탓이다. 그래도 걱정은 됬는지 딱 한 번 버키가 찾아왔지만 옆에 있던 펜치를 던지는 탓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쫓겨났다. 분해. 토니는 시큰거리는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사실 아주 방법이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체스를 할 때처럼 수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이건 각오의 문제였다.
나오는 답은 하나 뿐이었다. 4일동안 골몰히 몇 번을 생각해도 토니가 버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었었다.
스티브 로저스가 버키 반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력자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어느 연인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끈끈한 우정이었고 그랬기에 레드스컬을 물리친 후 함께 얼음 속으로 들어가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의 입으로 들었던 그 일대기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을 되짚어 봤을 때, 버키 반즈의 가장 빛나는 보석은 스티브 로저스였다. 그러니까 토니는 그것만 빼앗아 오면 버키에게 손쉽게 이길 수 있다. 게다가 그를 숭배하는 아버지에게도 이기는 것이 되니 그것으로 가질 토니의 성취감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할 것이었다. 문제는 그걸 빼앗았을 때, 버키가 그에게 행할 '벌'이었다.
넌 죽는 거고. 토니는 코웃음을 치며 그 말을 되세겼다. 죽는다는 말은 정말 죽이겠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의 행동과 지금까지의 섹슈얼한 그들의 공기를 봤을때, 죽음은 곧 토니의 순결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20년간 소중하게 지켜온 백버진을 빼앗긴다는 것은 그에게도 큰 의미였다. 지금껏 뭇 여성들과 난잡하게 놀기는 했지만, 그가 허용한 남자는 오로지 찰스 하나 뿐이었다. 그의 순결은 자신을 지켜주는 완벽한 기사를 위해 고이고이 간직하던 케이크였다.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었고 조건 없이 사랑을 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래주길 바라는 가장 값비싼 먹이였다. 그랬기에 깨끗해야 했고 완벽해야만 했다, 그의 첫경험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시작한 시합 따위로 날려 버릴 수 없는 패였다. 그걸 알면서도...
토니는 창문 너머 빠르게 정원을 달리고 있는 스티브와 버키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땀에 젖어 티셔츠가 달라붙은 버키의 몸을 보았다. 그리고 저 단단한 팔과 가슴이 저를 짓누르던 것을 떠올렸다. 토니는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각오의 문제였다.
***
어째 아슬아슬하다. 스티브는 정원 분수대에 앉아 졸고 있는 토니를 보며 생각했다. 공구실에만 내동 박혀있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선 분수대에 앉아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스티브와 버키가 정원을 스무 바퀴 돌 때 동안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저거 또 무슨 꿍꿍이야? 버키가 나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스티브가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보여서 고개를 갸웃했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괜히 방해하는 것 같아서 조깅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했는데 창 밖 정원엔 여전히 토니가 똑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손에 쥐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러다간 빠질 텐데. 스티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쉽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토니가 불편했다. 새파랗게 어린 아이였지만 그랬기에 더 그랬다. 종잡을 수가 없다. 남자였지만 아직 선이 잡히지 않은 덜 여문 몸을 하고 있었고, 성격은 여자처럼 새침하고 예민했으며, 가만히 있으면 어른 같은데 마냥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굴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자신의 단순한 성격과는 달랐다. 그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두고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걔 완전 또라이야. 버키는 토니에 다해 그렇게 폄하했다. 스티브 네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친 놈이니까 왠만하면 상대 하지 마. 그렇게 심드렁히 충고까지 남겼다. 그랬던 주제에 그 사이 버키는 토니와 꽤나 친해진 듯 간혹 둘이 투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토니가 공구실에 박혀 나오지 않자 밥도 안 먹고 뭐하는 거냐며 투덜거리다가도 저렇게 굶으면 안돼는데, 하고 걱정을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스티브는 내심 그게 부러웠다. 자신이 얼음 속에 쳐박히지 않았다면 아마 토니만한 아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오랜 연인 페기를 떠올렸고 문득 토니의 갈색 곱슬머리와 반짝이는 커다란 눈이 그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아직 페기에게 남은 미련이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래서 토니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연인간의 사랑은 아니었지만 페기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그에게라도 해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동안 스티브는 토니가 자신을 미워하는 이유가 뭔지, 그에게 결핍되어있는 것이 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하워드는 늘 바빴고 아마 자신이 빼앗았던 그 자리를 미흡하게나마 채워주는 것으로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그렇게 스티브는 살아가면서 계속 믿고 따를 수 있는 아버지 같은 그늘을 토니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거야. 스티브는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몸을 움직였다. 계속해서 말을 걸다 보면 토니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적대감도 조금은 누그러 질 것이다. 그럼 조금이나마 제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의 계획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스티브가 분수대에 도착했을 때, 잠을 깨울 요량으로 토니를 불렀지만 오히려 그 소리에 놀란 토니는 뒤로 발라당 넘어가 버렸다. 풍덩- 하는 소리가 났고 토니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홀딱 젖어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스티브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잠이 깬데다가 물에 빠지기까지 한 토니는 신경질적으로 스티브를 노려보았다.
“제가 좀 무시했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 하니까 좋아요?”
“아니, 토니, 난…”
“젠장…”
물을 먹은 책을 집어 들며 토니가 욕지기를 했다. 낑낑거리면서 몸을 일으키자 몸을 타고 흐르는 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흰 티셔츠가 물에 푹 절여져서 몸에 들러붙었다. 흰 티셔츠 아래 마른 몸의 윤곽과 살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면서 토니는 젖은 머리를 털었다. 하지만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은 자꾸만 얼굴에 붙었다.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맺히고 볼을 타고 흘렀다. 흐르는 물방울이 입술에 맺히고 턱을 따라 아래로 똑 떨어졌다. 스티브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 보았다. 별 것 아닌 그저 젖어있는 아이일 뿐인데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맺힌 물기나 색색거리면서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슴 같은 것들이 시선 끝에 붙어왔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묘한 기분이 들어 스티브는 억지로 시선을 떼려 했지만 다음에 한 토니의 경악스런 행동에 그마저도 무산되었다.
젖은 반바지가 무거운지 나가려던 토니가 고개를 숙여 반바지 끝을 접었다. 허벅지 반을 차지하던 천이 둘둘 말리며 허벅지 끝까지 말렸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뽀얀 살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운동을 하지 않아 말랑말랑한 그것은 계집아이의 덜 여문 가슴 같이 탐스러웠다. 그리고 선정적이었다. 스티브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토니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줘요. 나가게.”
퉁퉁 부운 얼굴 만큼 퉁명스런 말투였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홀린 사람처럼 스티브는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토니는 분수대 난간에 다리를 올렸다. 쭉 뻗은 허벅지 아래가 아슬아슬했다. 손을 잡고 낑낑거리며 올라온 토니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던졌다. 하얗고 작은 발이 나왔다. 이제 토니는 허벅지 아래로 완벽한 맨 몸이었다. 난간에 올라선 탓에 눈 높이로 보이는 그 다리 두 개에 스티브는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아, 씨이- 냄새 나.”
“…괜찮아? 미안해. 놀리려던 건 아니었어.”
“됐어요. 가서 씻을래.”
폴짝 하고 난간에서 내려온 토니가 성큼거리는 걸음으로 걸었다. 잔디를 맨 발로 걷는 모양을 본 스티브가 토니를 낚아챘다. 정확히 말하면 뒤에서부터 끌어 안고 들어 올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었다. 졸지에 공중에 뜬 토니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뭐하는 거에요??!!”
심통이 단단히 난 아이처럼 토니가 바둥거렸지만 스티브는 잡은 허리를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먹은게 없어 살이 빠진 게 당연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공중에 들어올려진 다리 두 개가 허우적 거리는 것이었다. 작은 발꿈치가 제 무릎을 자꾸 쳤다. 애써 돌아가는 시선을 올리면 바로 앞엔 토니의 뒷목이 보였다. 거기서 물비린내와 함께 어린 애 살 내음이 났다. 입에 넣고 씹으면 과육 터지듯 그 풋내가 입 안에 가득 할 것 같았다. 스티브는 다시 마른 침을 삼킨다. 그는 온전한 정신을 붙잡기 위해 속으로 몇 번이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돌맹이 밟으면 아파. 그러다 다쳐.”
“허, 누구 때문에 이 모양인지 모르나봐요? 나 지금 아저씨랑 말 섞기도 싫거든요? 좀 놔주세요. 남이야 다치든 말든.”
“그럼 이거 신고 가.”
자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그 위에 토니를 올려 놓았다. 작은 발 두개가 커다란 운동화 안으로 쏙 들어갔다. 동그란 발가락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놀랍고 죄스러워 토니를 잡았던 손을 얼른 놓았다. 고개가 돌아간다. 토니가 스티브를 보았다. 친절을 베푸는 것이 의문인지 동그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시선 닿은 곳이 저릿저릿 했다. 훅- 하고 피가 돌았다. 머리가 아찔했다.
“뭐, 고마워요.”
멋쩍은 듯 그렇게 툭 말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스티브는 제자리에 서서 토니의 하얀 두 다리와 그 아래 커다란 자신의 운동화를 보았다. 맞지 않는 운동화에 휘청거리는 뒷모습은 막 걸음을 뗀 사슴 같았다. 완벽하게 집 안으로 토니가 쏙 들어가고 나서야 스티브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괜히 혼자 민망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저만치 던져진 토니의 신발을 찾았다. 평범한 디자인의 슬리퍼 한 짝이 스티브의 손 위에 쏙 들어왔다. 작다. 근데 마냥 귀엽지만도 않다. 그의 굵은 손가락이 발바닥이 닿았을 자리 가운데를 문질렀다. 발바닥은 어떤 모양일까? 그는 생각했다. 보지 않아도 분명 예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
방으로 돌아온 토니는 발에 신겨진 커다란 신발을 내려다 보았다. 원래 혈청을 맞으면 손 발도 다 커지는 건지, 아니면 그가 그냥 작은 것인지 발이 들어가도 한참 남는 공간을 보며 토니는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휘둘렀다. 발에서 벗어난 신발이 벽에 부딪혀 아무렇게나 바닥을 구른다. 내팽겨친 그것이 처량하게 바닥에 있었다. 그걸 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별 것도 아니네.
그 시대에 사람들이 가질 만한 패티쉬를 알아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하워드가 가지고 있는 스티브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미리 습득한 결과였다. 미니스커트가 등장하고 다리가 은밀한 부위처럼 취급되던 시기에 금욕적으로 자라온 그 남자에게 여자 아이처럼 적당한 살집 있는 토니의 다리는 꽤 선정적이었을 것이다. 빠져드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토니는 꽤 자신만만 했다. 그는 새삼 자라지 않은 자신의 몸에 감사했다. 그리고 페기 카터,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동료인 그녀와 머리카락 색이 닮은 것은 이 순간을 위해 신이 준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선에 예민한 그가 자신을 통해 그녀를 보는 남자의 생각을 읽기란 쉬웠고 지금 나온 이 결과가 너무나도 뻔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토니는 뻔하고 지루한 그 과정을 견뎌냈다.
왜냐하면…
끼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그렇게 음산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등 뒤로 소름이 돋았고 긴장으로 허리가 쭈뼛 섰다. 끼익- 하고 달칵 문이 닫혔다. 철컥 잠겼다. 후으- 한 숨소리가 났고 곧이어 젖은 등 뒤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단단한 팔이 등 뒤에서 뻗어와 토니를 끌어 안았다. 목께에 숨이 닿았다. 간지럽고 뜨거워 토니는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처럼 그를 끌어안은 커다란 손이 가슴 위를 움켜 쥐었다가 아래로 내려와 자랑할만큼 여린 허벅지 안쪽에 파고 들었다. 그리고 오무려지는 양 다리를 잡아 벌려 더 안쪽의 여린 살을 문질렀다. 그리고 잡아 당겼다. 엉덩이 뒤로 느껴지는 단단하고 뜨거운 열기에 토니는 하마터면 황홀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내가 말했지?”
귓가에 느리고 무거운 속삭임이 들렸다. 토니는 몸을 비틀었다. 몸을 전율하게 하는 이 느낌이 좋아서 그런 건지 무서워서 그런 건지 분간 할 수가 없었다.
“죽는다고.”
허벅지를 문지르던 손이 위로 올라와 허리에 둘러졌다. 아까 스티브에게 당했던 것처럼 공중에 들어 올려지고 그러면서 한 짝만 남았던 스티브의 운동화가 토니의 발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버키의 발에 차여 저만큼 굴러가 형편 없이 바닥에 널부러 졌다. 토니를 들고 버키는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이 몇 번이나 입을 맞추고 몸을 더듬던 침대를 향해서. 그리고 토니의 몸을 아무렇게나 그 위에 내던졌다. 속절 없이 토니는 쓰러졌다. 포근하니 자신을 받아내는 침구에 파묻혀 토니는 그제야 뒤를 보았다. 비틀려 웃고 있는 얼굴이, 화가 난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짜릿함이 일었다. 아- 너무 좋아.
“벌 주세요.”
그러니가 이건 순전히 각오의 문제였다. 4일간의 고민 끝에 그는 드디어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토니는 이것이 벌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자존심 하나에 이렇게 아껴왔던 처음을 버리고 마는 제 결정에대한 스스로의 매질이었다. 아무리 저울질을 하고 고민을 해봐도 이 위험한 도박의 순간을 내심 고대해온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몸을 내어주더라도 절대로 마음은 주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겼다고 생각했을 그 순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할 버키를 떠올리면 토니에게 이깟 첫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토니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정면으로 버키를 보았다. 누운 자리에서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렸다. 부끄러움은 없었다. 혀로 입술을 핥았고 손으로 스스로의 몸을 더듬었다. 접시 위에 가장 달고 맛있는 케이크처럼. 정욕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한 버키가 침대 위로 밀려 들어 왔다. 토니는 그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기쁜 듯 웃었다.
“아프게 해주세요.”
이순간을 갈망하던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며 당신을 원망할 수 있도록.
어서오세요. 내 다리 사이 당신의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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