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And Beautiful 16

( Steve Rogers, Bucky Barnes X Tony Stark )











엉망으로 취해버린 사람들과 목청 높여 떠드는 목소리에 묻힌 채 스티브는 지루함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단순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달아준 훈장은 뒷전이 된지 오래다. 에프터 파티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누가 더 잘 났는지 떠드는 사교 모임으로 변질되었다. 현 상황의 정치와 문화, 사회 전반에 걸친 대화 주제는 어려운 단어와 사르카즘 섞인 말투로 어쭙잖은 사람이 들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허세에 가득 차있었다. 어떻게 달라진 게 없나. 스티브는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들이키며 그 아래로 짧게 혀를 찼다. 이미 전쟁에서 고위층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적 있는 그로서는 치가 떨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축하해준다는 명목 아래 모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그는 어색한 표정을 감추려 연신 취하지도 않는 술만 들이켰다. 


자신만큼이나 아마 그의 친우 버키 역시 그와 사정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다만 스티브와 다른 점은 그가 브루클린 멋쟁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사교적인 성격이었고, 그 매력적인 미소를 무기 삼아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얻어낸다는 것에 있었다. 지금만 봐도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붉은 드레스의 여성은 시선을 단 한 번도 돌리지 않고 온전히 버키에게만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그를 침대로 끌어들이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얼굴이었다. 물론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침부터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히 환상적인 블로우 잡을 받고 왔는데 굳이 그가 하룻밤 여자를 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는 버키에게서 고개를 돌려 하워드를 보았다. 하워드는 하워드였다. 비록 나이가 들어 외견은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여전히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마치 이 파티가 오로지 하워드를 위해 주최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집중하고 재치 있는 말 한 마디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죄책감 넘치는 일이지만 하워드를 보면 자연스럽게 토니의 조금 더 나이 든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듣기로는 파티광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던데, 하워드가 있는 자리에 토니를 놓고 보면 꽤 어울리기도 헀다. 어느 누가 그 아이에게 시선을 뗄 수 있단 말인가. 질투 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반면 스티브는 이목을 끌길 원하지도, 그런 포지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마르고 볼품없던 시절에는 자신감이 부족했고, 그 이후로는 갑자기 몰리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이런 귀퉁이 자리를 고수하곤 했다. 하워드처럼 언변이 좋지도 않았고, 버키만큼 노련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파티의 주인공이 이렇게 있으면 쓰나." 



때문에 이 정적을 깨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등장에 스티브는 상념을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서글서글한 웃음을 짓고 있는 오베디아 스탠이 그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하워드의 사업 파트너이자 토니의 대부라고 소개를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그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지난번 파티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살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말을 섞은 기억은 없었지만 사업하는 사람답게 호감 가는 인상을 하고 다가오는 오베디아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꽤 지루한가 보지? 

"파티를 즐기는 부류는 아니라서." 

"확실히 재미있는 파티는 아니지. 걱정 말게. 조금 지나면 다들 지쳐 나가떨어질 거야. 그나저나 토니는 잘 지내나? 지난번 이후로 안 본지 꽤 된 것 같은데." 

"잘 지내네." 



내심 그와 했던 불장난을 떠올린 스티브는 뜨끔해했지만 여상하게 말을 이었다. 이를 모르는 오베디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 따위의 추임새를 넣었다. 사실 그는 딱히 토니의 안부에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술로 젖은 입술을 핥으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잡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의미 없는 이야기가 몇 번 오가고 나서야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말을 꺼냈다. 



"사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꽤 크네." 

"나한테?" 

"그래. 하워드가 말할 때까지만 해도 확신이 없었는데 말이야. 정작 성공한 케이스를 앞에 두니 생각이 바뀌었거든. 뭐 요즘 말이 많잖아. 생명 연장이니 장애 없는 세상이니 뭐니... 중국 진시황 시절 불로불사 타령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 뭐 어쨌든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나왔으니, 덕분에 짭짤한 돈 벌이가 되겠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아직 하워드한테 아무 말도 못 들었나? 슈퍼 혈청 말이네. 상용화를 시킨다고.. 이봐!!" 



오베디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티브는 들고 있던 잔을 손으로 우그러트려 깨트리고 말았다. 쨍그랑 소리에 사람들이 주목했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스티브는 자리에서 벗어나 사람들 틈 사이에 있는 하워드의 팔을 움켜쥐었다. 놀란 하워드가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보았지만 스티브는 노기 어린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그를 그 자리에서 끄집어 냈다. 성큼 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서는 스티브를 따라 하워드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양해를 구하고 질질 끌려갔다. 그들은 파티장을 한참 벗어난 빈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멈췄다. 세상에, 스티브. 무슨 일인가? 하워드는 스티브가 잡아챘던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자네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왜 그러는 건가?" 

"혈청으로 돈벌이를 하겠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아- 그거. 하워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스티브의 분노에 대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피곤이 몰려오는 듯 머리를 쥔 그는 씩씩거리는 친구의 얼굴을 슬쩍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떠한 말로도 그를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해명을 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냐. 미쳤다고 세상 사람들을 다 슈퍼솔져로 만들겠나? 나는 그저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자네처럼 건강해질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뿐이네. 생각해보게, 스티브. 자네가 가진 혈청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의 위력을 더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겠나." 

"아직 밖에 하이드라가 남아있어. 그들이 그걸 악용할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나?!" 

"모든 일에는 다 위험이 있는 법이야.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만든 게 핵폭탄을 야기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제기랄, 하워드!! 이건 핵폭탄보다 더 큰 문제를 만들게 될 거야!! 그들이 버키에게 저지른 짓을 봐!!"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않았나."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하워드, 제발. 그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혈청을 손에 넣으려고 할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 가족들이 위험해질 거라고는 왜 생각하질 못해!!" 

"내가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겠나!!!" 



발악하듯 하워드가 기어이 언성을 높였다. 그는 욕지거리를 씨근거렸다. 이토록 스티브가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의 뇌리에는 아직도 실험대에 놓여있는 버키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하워드의 말대로 그들의 실험으로 버키는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혈청을 노리고 있었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하워드도 그 용의선상에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가족인 마리아와 토니 역시 위험에 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혈청을 손에 넣는다면 그들이 군대를 양산할 것은 물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군대가 히틀러의 장병처럼 온 세상에서 활개를 칠 것이다. 스티브는 그것을 두 눈으로 그냥 바라보기만 할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워드는 간절했다.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려는 이유가 그에게는 존재했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정처 없이 방 안을 돌아다니던 하워드는 기어이 감춰두었던 괴로운 속내를 털어놓았다. 



"스티브, 자네는 지금이 어떤 실정인지 몰라. 90년대에 절대 악은 없어. 히틀러처럼 전쟁을 일으켜 민족을 탄압하고 독재를 꿈꾸는 미치광이 따위 없단 말일세. 그래, 자네가 가졌던 신념, 조국을 위한 투쟁? 요즘 세상에 그런 건 없어. 그저 누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는 사상을 가지고 애들처럼 다투고 있을 뿐이야. 그런 세상에서 나는 무기를 만들고 있네. 내 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상상이 가나? 심지어 나는 그들의 잘잘못조차 모르고 있는데...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 보잘것없는 자네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삶을 주고 싶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단 말일세." 



그 긴 시간 동안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만들어 지금껏 지내왔지만 하워드의 회환은 깊었다. 그 천재적인 머리로 전쟁을 위해 힘을 썼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그는 그저 무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나아간다면 무기를 만드는 것을 그만두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당장 그가 군수사업을 그만둔다 했을 때, 그의 밑에 딸려있는 수많은 직원들과 하청업체들이 길바닥에 나앉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둔다고 해서 그의 무기로 죽어나간 사람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고민들에 빠져 있을 때쯤 스티브가 발견되었고 하워드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슈퍼솔져 프로젝트에 사용된 혈청은 어스킨 박사의 죽음 이후로 진전이 없었다. 물론 그 자료들이 남아있긴 했지만 당시 논의되었던 것처럼 모든 자료들은 극비리에 붙여졌다. 하워드는 지체 없이 그 자료들을 끄집어 냈다. 성공체가 눈앞에 있으니 더 주저할 이유가 무어 있단 말인가. 물론 그도 알고 있다. 이 위험성에 대해서, 그가 성공했을 때 누군가가 악용할 사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욕심으로 멀어 있었고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모든 일 생길 위험성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연구를 계속해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워드의 생각이었다. 스티브는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하워드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동조를 해줄 수는 없었다. 조국에 대한 투쟁이나 신념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이 일로 인해 그의 소중한 토니에게 미쳐질 위험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그 위험으로 그를 잃을 것을 떠올린다면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찔해졌다. 하워드의 말처럼 현대에는 40년대에서 행했던 스티브의 행동들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그는 캡틴 아메리카였을지 모르나, 현재 이곳에서 그는 사랑에 빠진 스티브 로저스였을 뿐이다. 7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겨우겨우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저만을 위한 손안의 행복을 얻었고 그는 그것을 져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만 둬, 하워드. 이렇게 하는 말이 마지막일세. 나는 자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야. 

"스티브, 나를 이해해 줘야 해! 

"나는 이해 못 하네. 불쌍한 마리아와 토니를 생각해보게. 왜 그들을 자처해서 위험에 빠트리는 건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하는 자네의 행동은 옳지 않아." 



입을 일자로 굳힌 채 하워드는 답이 없었다. 그의 고집이 이런 말로 쉽게 꺾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이런 스티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실험을 할 것이었고, 만약 그가 그만두지 않을 생각이라면 스티브는 스티브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야 할 것이었다. 숨어 있는 하이드라 잔당들을 모두 소탕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의 품 안에 있는 토니는 제 손으로 지켜야 할 것이었다. 부러 말이 없이 돌아서는 스티브를 향해 하워드는 나직하게 한 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나는 그만 둘 수 없어. 그러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토니 그 애를 부탁하네." 



이기적인 바람이었다. 그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진 줄 모른 채 그렇게 말하는 하워드에게 스티브는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스티브는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침묵을 지켰지만 하워드 역시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스티브는 문 옆으로 기대어 서있는 버키와 마주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어디서부터 얼마나 들었는지 물을 필요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복도를 가로지르는 스티브의 옆에 묵묵히 따라 걸었다. 그들은 파티룸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키고 다시 내뱉으며 스티브는 복잡한 생각에 빠졌고 버키는 가만히 옆에 서있었다. 그는 말을 잃은 스티브를 한 번 보고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내 그 앞에서 흔들었다. 차 키가 그의 손가락에 걸려 짤랑거렸다. 차도 없는 그에게 차 키가 있을 리 만무했으니 어디에서 훔친 것이 분명했다. 스티브는 제 친구의 행동력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고, 버키는 이에 응수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버키." 

"하워드 꺼고, 빌리는 거야. 어차피 내일 스위스 간다니까 차는 필요 없겠지. 지금부터 꼬박 달리면 어... 내일 아침쯤 도착하겠네. 운전하는 거 까먹은 건 아니지? 여섯 시간 동안 혼자 운전해야 하는 거면 너 놓고 갈 거니까. 

"걱정 마, 가자." 



달랑거리는 차 키를 낚아채며 스티브가 앞장섰다. 그들은 망설임 없는 행동력으로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그 행동 속에서 가벼운 말조차 없는 침묵을 고수하며 두 남자의 표정은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비장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토니의 곁에 있는 것, 그들의 팔 안에 있는 그를 그저 행복하게만 할 수 있도록 모든 풍파를 막아서는 것,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것도 위협되지 못하도록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차는 달렸다. 흔들림 없이 차는 파티장을 등진 채 밤거리를 달렸다. 곧게 뻗은 길을 달리며 곧 밤의 어둠에 먹혀들어갔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 






행동력이 뛰어났던 것은 그 둘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요염한 롤리타는 어여쁜 만큼 앙큼하고 영악했다. 그는 일주일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꼬박 달려 도착한 집에서 얌전하게 그들을 기다리던 토니는 오롯이 혼자였다. 새벽부터 나갔을 마리아를 제외하더라고 그들을 보필할 하녀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잠에 취해 쇼파에 늘어져 있던 토니가 한껏 팔을 벌려 두 사람의 목을 끌어안으며 해죽 웃었다.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잠꾸러기가." 

"조신하게 기다린다고 했잖아. 아침에 엄마한테 들었어. 어제 밤늦게 출발했다고." 

"하워드한테 들었나 보네. 혼자 있었어?" 

"응- 르네랑 낸시는 휴가 보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여파인지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토니가 말했다. 토니가 그녀들에게 휴가를 준 것이 그냥 주인 입장에서의 배려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의 상념들을 지워버릴 만큼 깜찍한 짓에 버키는 웃으면서 토니의 말랑한 볼을 앙- 하고 씹었고 스티브는 제 목에 둘러진 팔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는 웃었다. 밤새도록 그들을 괴롭히던 걱정과 근심으로 굳어있던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져 버렸다. 참 신기하다. 사랑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건 아닐 텐데도 토니가 곁에 있으면 세상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스티브는 그게 좋으면서도 못내 걱정스러웠다. 혹여나 눈이 멀어 눈앞에 위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하워드가 벌려놓은 일로부터 토니를 지키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 자꾸 정신을 바짝 차리려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행복을 맛보고 싶었다. 훈련되지 않은 강아지처럼 눈앞에 꿀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참을성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자꾸 안달을 하게 된다. 이제 일주일을 그들만의 천국인 것처럼 즐기게 될 것이었으니 참을 필요조차 없어져 버렸다. 이미 입술을 부비고 있는 버키 옆으로 스티브는 토니의 옷 안에 손을 밀어 넣어 살결을 만진다. 그 간지러운 손길에 몸을 움츠리던 토니는 이내 맹렬한 커다란 두 사람을 끌어안은 채 뒤로 발라당 넘어간다. 넘어간 몸에 균형을 잡으려 팔을 뻗다가 탁자 위 꽃병이 깨지고 온통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난장판을 보고도 토니는 천진한 아이처럼 꺄르르 웃었다. 연인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웃었다. 집 안 가득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세 사람만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어느 동화의 마무리처럼, Happily ever after- 와 함께 종소리가 울릴 것 같이... 



"어서오세요오- 내 사랑들." 



아아- 그러니 그냥 눈이 멀어도 좋았다. 영원히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의 팔 안이 곧 천국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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