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And Beautiful 11
(Steve Rogers, Bucky Barnes X Tony Stark)
"Morning, sunshine."
달달한 목소리로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이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금발에 토니는 그것이 스티브라는 것을 인지했다. 늘어지는 몸을 돌려 낑낑거리며 기지개를 켜고 다시 침대에 축 늘어졌다. 눈을 두어번 깜빡거리자 다행이도 잠은 금새 달아났다. 들쭉날쭉한 저혈압 때문에 아침마다 곤욕을 치르는 것치고는 훌륭한 결과였다. 아마도 오래 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근심 걱정거리가 사라진 탓도 있을 것이었다. 토니는 상체를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다가 도로 누웠다. 힘이 안 들어가. 찡찡거리는 말에 스티브가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스티브의 목에 손을 감자 무릎 아래를 받쳐 안은 스티브가 그대로 토니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욕실로 향했다.
"나.. 냄새나죠?"
"아니, 괜찮은 것 같은데..."
"자는 동안 한 번도 안 씻었어. 씻을 기운도 없더라고."
"씻겨줄게, 괜찮아."
품에 축 늘어진 토니를 안아다가 욕실의 좌변기 뚜껑 위에 앉혀 놓았다. 괜히 놀릴 심산으로, 볼일은 안 봐도 되나? 그거 참으면... 까지 했다가 정강이를 얻어 맞고 말았다. 맞고 나서도 마냥 좋은지 스티브는 웃으며 칫솔에 치약을 짜서 토니에게 건넸다. 잠으로 퉁퉁 부은 얼굴을 한 토니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스티브를 한 번 올려다 본 다음에 칫솔을 건내받기 보다는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어리광을 부려보겠다는 심보였지만, 스티브는 갑작스러운 토니의 잔망에 당황한 듯 했다. 버키라면 모를까 토니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얼굴을 잔뜩 붉힌 그는 토니의 턱을 잡아 올려 입 안을 살살살 칫솔질 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아가처럼 구는 거."
"오아? 애아 오앴아...엑..!"
"씁, 가만히 있어."
말을 하는 통에 칫솔이 입천장을 찔렀다. 웩웩 거리며 헛구역질을 하자 스티브가 제법 엄숙하게 타일렀지만 이미 입에 미소가 걸려있는 상태에서 하는 꾸지람은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토니는 순종하며 얌전히 제 입을 내어 주었다. 입안의 치약을 몇 번이나 헹구고 스티브는 검사라는 명목 하에 손가락으로 입 안 이곳 저곳을 문질렀다. 애교 있게 살짝 마디를 물리고 나서야 손가락을 빼고 볼을 주욱 잡아 당긴다. 아프으아아- 골이 난 표정을 짓자 그제야 스티브가 손을 놓고 웃었다.
"말랑말랑 하네."
"누구랑 달리 어려서 그래요. 그리고 그 때도 실컷 만져놓구선..."
"그 땐 정신 없었어. 만세."
"만세에-"
팔을 번쩍 들자 밑에서부터 올린 티셔츠를 한 번에 벗겨 버렸다. 그리고 바지 끝을 잡아 쭉 내리자 허무할 정도로 아랫도리가 한 번에 벗겨졌다. 속옷은 벗겨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자 토니도 조금 민망한지 볼을 긁적거리더니 여기서부턴 자기가 씻겠다며 나가서 새 옷이랑 속옷 좀 챙겨달라고 한다. 마저 다 씻기지 못한 게 아쉽지만 오늘만 날은 아니니 스티브는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드레스 룸 서랍에서 속옷과 편한 티, 바지를 꺼내 욕실 앞에 놔두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스티브는 욕실에서 나는 물 떨어지는 소리와 토니의 흥얼거리는 콧노랫소리 그리고 화창한 창 밖의 날씨를 느끼며 평화로운 아침을 즐겼다. 그 정적인 아침 공기를 깨고 샤워를 마친 토니가 홀라당 벗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나오는 바람에 사레가 걸려 한 참 기침을 하는 통에 고요한 분위기는 다 깨져버리고 말았지만. 토니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스티브는 목을 가다듬고 앉은 자리 무릎을 탁탁 쳤다. 그러자 옷을 다 껴입은 토니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쪼르르 와서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고 수건으로 제 머리를 말려주는 스티브의 손길에 나른하니 눈을 감고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워 했다.
"평소에도 그래?"
"뭘요?"
"그.. 다 벗고 다니는 거.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같은 남자끼리 뭘 새삼... 그리고 내 집인데 뭐가 어때서? 갑자기 불쑥 들어온 아저씨 잘못이지. 그리고 이미 다 봐놓구선 총각처럼 군데?"
"...토니."
"알았어요, 알았어. 그런데 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평소에는 아빠처럼 굴면서 왜 침대에선 애기같이..."
"토니, 입."
"Yes, Daddy."
지퍼로 입을 닫는 시늉을 하면서 베시시 웃는다. 결국 그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한 스티브가 수건채로 아이의 얼굴을 잡아서 입술을 가져간다. 입술을 안으로 말고 있는 그 입에 입을 맞추자 장난스럽게 토니가 고개를 돌렸고 스티브는 손에 힘을 주어 튀어오른 볼살을 이로 앙- 물었다. 개야? 맨날 물게? 하면서 또 괜히 신경질을 내길래 볼 뿐만이 아니라 턱이며 목이며 다 씹어 놓았다. 기어이 티 안으로 손을 넣어 살이 내린 갈비뼈를 간질이자 그제야 꺄르르 웃으며 항복을 외쳤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버키!"
"Hey, Beautiful."
아침 쟁반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던 버키가 둘을 보더니 괴상한 표정을 했다. 스티브의 손아귀에 시달리던 토니가 그를 다급하게 불렀고 그는 웃으며 토니의 정수리에 키스를 하고 옆 탁자에 쟁반을 올려 놓았다. 쟁반 위에는 잘 익은 토스트 빵과 잼, 우유, 과일과 샐러드가 세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큼 쌓여 있었다. 토스트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며 버키가 엄포를 놓았다. 너 이거 다 먹을 때까지 내려갈 생각도 하지 마. 그 말에 놓여있는 포크는 본채 만채 손가락으로 잘라진 토마토를 입에 쏙 넣으며 토니는 혀를 베- 하고 내밀었다.
"아버지를 어떻게 구워 삶았길래 아침을 들고 올라왔어?"
"어리고 젊은 사람들끼리 긴히 아침먹으면서 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뭐래, 노인네가."
"너 그렇게 말 막하면 스티브한테 혼난다."
"이미 혼났다, 뭐."
버키가 입에 넣어주는 토스트를 먹으며 토니가 툴툴거렸다. 지난 고민은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침 시간을 보냈다. 주제는 거의 일상적인 것이었고 가벼운 것들이었다. 기어이 입 안에 밀어 넣어주는 마지막 토스트 조각까지 꾸역꾸역 입에 넣은 토니는 다람쥐처럼 입을 부풀린채 짜증을 냈다. 이렇게 매일 먹다간 돼지가 될거야. 그렇게 툴툴 대는 것도 너무 안 움직인다며 같이 운동을 하자고 하는 스티브와 살쪄도 예쁘니가 괜찮다고 하는 버키 덕분에 하느니 마느니 한 불평이 되었지만, 그래도 입에 있는 걸 우걱우걱 씹고 삼킨다. 착하네. 쟁반을 정리하는 스티브를 대신해서 버키가 칭찬을 해주었다. 고작 날짜가 바뀌고 해가 떴을 뿐인데 하루의 시작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예전에도 별로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또 좋아서 토니도 마냥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
"바다 가자."
외출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며칠 누워있었더니 좀이 쑤셔서 집에 못 있겠어. 그 단 한 마디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서재에서 무료한 공부를 해야할 두 사람의 일정은 둘째치고 집 안의 모든 사람들 역시 발칵 뒤집혔다. 바다라고 해봐야 그들이 있는 햄튼은 해변을 끼고 있기에 멀리 나갈 필요가 없었지만, 도련님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피크닉 준비를 해야하는 하녀들은 주방이며 거실이며 바삐 움직이며 짐을 챙겨야 했다. 거기에는 마리아의 호들갑도 한 몫을 더했다. 방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아들이 모처럼 생기 발랄하게 밖으로 나왔으니 그녀로서는 얼굴이 피는 것도 당연했다. 애도 아니고, 그냥 나가서 사먹는다니까. 부루퉁하게 말하는 토니의 말은 묵살된 채 온갖 먹을 것들이 들어있는 피크닉 바구니와 파라솔, 돗자리는 스티브와 버키의 양손 가득 들려지게 되었다.
햄튼의 스타크 소유 해변까지는 정원을 벗어나 걸어서 30분 거리였다. 토니는 제 발보다 큰 슬리퍼를 질질 끌며 팔랑팔랑 걸었다. 그 세 걸음 뒤에 걸으면서 버키는 한가로이 부는 바닷바람을 즐겼고 스티브는 토니에게 그러다 넘어진다면서 타박을 주었다. 해변은 완벽하게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었기에 그 넓은 백사장은 모조리 셋의 차지가 되었다. 해변가 구석에 돗자리를 피고 파라솔을 꽂은 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웃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토니의 허리를 끌어 안은 버키가 그대로 바다로 빠져버렸다. 스티브, 살려줘어- 괜한 엄살을 피우면서도 토니는 깔깔거렸고 그런 그의 손을 스티브가 잡아 끌자 답싹 몸에 팔 다리를 감아 안겼다.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헤엄을 치기도 했고 시합을 하다가 중간에 쥐가 났다고 토니가 거짓부렁을 하는 바람에 한 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결국 토니의 아랫입술에 파란기가 보일 때까지 놀고 나서야 셋은 밖으로 나왔다.
"이리 와."
덜덜 떨며 수건을 두른 토니를 끌어다 버키는 제 다리 사이에 놓고 두 팔로 폭 안아 주었다. 손 차네. 스티브가 토니의 손을 꼭 잡고 주무르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혈청을 맞아 보통 사람에 비해 신진대사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눈 앞에서 목격하니 골이 나는지 토니가 투덜거렸다.
"둘 다 사람 맞아? 그렇게 놀았는데 나만 추워?"
"어린 게 약해가지고는. 너도 내일부터 우리랑 조깅 뛰어."
"미쳤나봐. 몰라, 나 배고파..."
"기다려 봐."
주무르던 손을 놓고 스티브가 피크닉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잘 구워진 스콘과 잼, 버터, 예쁜 모양으로 깎아진 과일과 오렌지 주스, 우유까지 꺼내놓고 보니 꽤 가짓수가 많았다. 맥주가 없다며 투덜거린 토니는 그래도 스티브가 먹여주는 스콘을 맛있게 받아 먹었다. 아기새 처럼 주는 족족 입을 벌리는 토니를 보다가 스티브가 이번엔 충동적으로 스콘 대신 턱을 끌어다가 입술을 겹친다. 입술에선 바다의 짠내가 입 안에선 스콘의 단맛이 났다. 어쭈? 하고 뒤에서 졸지에 구경꾼 신세가 된 버키가 보란 듯이 토니의 뒷 목을 콱 물었다. 달달한 키스를 나누다 말고 토니가 끽 소리를 내며 저를 끌어안은 버키의 팔을 탁탁 쳤다.
"아파!!! 내가 무슨 개껌인 줄 알아? 둘 허구한 날 씹고 난리야!!"
"버키, 토니가 아파하잖나."
"아저씨는 사돈 남말하지 마시구요."
"네가 너무 맛있어서 그래. 예쁜 니가 좀 이해 해라."
"스콘 더 먹을래?"
"됐어. 둘 다 내 편이라면서? 근데 왜 둘이 팀 먹고 나 골려? 따로 있을 땐 완전.. 스티브, 사실 처음에 버키랑 나랑 내기 했었는데, 내가 당신 꼬시.. 으읍!!!"
"이거 먹어, 이거. 배고프다며."
입에 샌드위치를 쑤셔 넣는 통에 말을 다 마치지 못한 토니가 뒤에 있는 버키를 흘겨본다. 그러면서도 배가 고프긴 했는지 얌전히 손에 든 샌드위치를 야금야금 잘 먹는다. 영문을 모르는 스티브가 뭐냐는 듯 버키에게 눈짓을 했지만 그는 그냥 말을 돌릴 뿐이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저 꼬마랑 재미보자고 한 내기에서 친구를 꼬시겠다 도발하는 것에 넘어가 괜히 발끈해서는 죽이겠다고 말을 했다는 걸 차마 창피해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도 아니고. 괜히 궁시렁 거리며 샌드위치를 먹는 버키를 등지고 토니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다가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그래서 나 언제 죽일거야?"
"컥..!! 쿨럭, 야!!"
"뭘 죽여?"
이미 입을 틀어 막기에는 늦었고 스티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쳐다보았다. 그나마 친구 시선이라도 피하겠다고 버키가 토니의 허리를 끌어 안은채 등에 얼굴을 박는다. 한 말이 있으니 안그랬다 잡아 뗄 수도 없어서 가만히 있자 토니가 능청스럽게 첨언을 붙였다.
"버키가 나 죽인뎄어."
"버키, 애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어. 진짜 나빴지? 아니 처녀 따먹는다는 말을 무슨 그런 식으로..."
"풉...!! 켁, 토니..!!"
"아, 드럽게.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상스럽지 않게 말한거거든?"
입에 씹던 샌드위치를 뱉어버리는 반응을 보이는 스티브를 향해 토니가 투덜거리면서도 장난끼 가득하게 말했다. 처녀라니, 도대체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아무리 전장에서 남자들끼리의 저급하고 속물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고는 하나 스티브는 영 그런 것들이 익숙해 지지 않았다. 그것도 토니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은 더욱 그랬다. 순진하고 순수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입에 담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그나저나 저건 애를 데리고 무슨 내기를 벌인거야?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친구를 쳐다보지만 버키는 유구무언을 고수하며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둘 다 별 반응이 없자 토니는 흥미를 잃었는지 먹던 샌드위치를 놓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래를 밟으며 휘적휘적 저만치 가는 뒷모습이 사라졌고 둘 사이에는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공기를 깬건 오늘도 버키기 먼저였다. 아까까지 시선을 돌리던 그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라고 생각했는지 잠시간 고민 후 스티브를 향해 경고성 어린 단호함을 보였다.
"야, 그래도 내가 먼저다."
스티브는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차암 좋겠다, 새끼야.
***
해수욕은 늦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바다에만 있기에는 지루해서 파라솔 아래에서 낮잠을 자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금새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며칠동안 잘만큼 잤다고는 해도 물놀이의 피곤을 이길 순 없었는지 자고 있는 토니를 스티브가 업었다. 다른 짐들을 든 버키가 그 옆으로 나란히 걸었다. 바닷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왔고 지평선 너머로 붉게 해는 지고 있었다. 파란 바다를 노랗고 빨갛게 물들인 해, 정적인 공기,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무들, 어디선가 우는 풀벌레 소리가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잠을 자는 토니는 단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가 살짝 드리워져 있었고 그건 스티브와 버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키는 아주 오래전의 그들을 떠올려 보았다. 전쟁으로 얼룩진 그들의 어린시절은 이런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름 모를 부자들이 하루를 마다하고 파티를 열었고, 고물을 줍는 어린 아이들과 징집된 청년들로 혼란하던 그런 시절들이었다. 브루클린 뒷골목의 악취를 맡으며 황폐한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이런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린 나이에 군대에 자원했고, 그 사이에 스티브는 미국을 상징하는 슈퍼 솔져가 되었다. 납치와 실험, 하울링 코만도 멤버가 되어 스티브와 전장을 누비고 차가운 잠을 자기까지 버키는 이렇게 정적인 시간을 즐기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제 친우 역시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행복하다."
나즉하게 스티브가 속삭이듯 말했다. 버키는 웃었다. 저 멀리 해가 끄트머리를 보이다가 서서이 졌다. 등 뒤로 밤이 몰려왔고 하늘 위에는 보석을 뿌려 놓은 것 같이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는 정원에 누워 별을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러자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아이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로드트립을 가도 좋을 것 같았고, 실 없는 영화를 보거나, 어릴적 살던 브루클린 골목을 걸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실에 늘어져 있어도, 뭘 생각 하든 버키의 상상속에 세 사람은 마냥 웃는 모습이었다. 옆에 가장 친애하는 친구와 사랑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그랬다. 버키는 여기,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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